친구의 추천으로 쇼코의 미소를 읽게 되었다. 소설책을 읽은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사회과학책은 읽기 위해 노력했고, 수필과 자기개발서는 인간관계나, 삶에 동기를 얻기 위해 많이 읽었었다. 그런데 소설책은 많이 읽지 못했었다. 이상하게 그 동안 아주 몰입되는 소설을 많이 찾지 못해서 이기도 했다. 사회과학책을 읽다가 소설을 읽으면, 매료되기 보다는 뭔가 자꾸만 설명문처럼 읽게 되는것 같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소설책을 많이 읽으면 공감능력이 생기고, 감정을 보다 잘 조절할 수 있게 된다고 하기에 읽었다. 또한 수필과는 다르게 소설은 현실 속에서 감정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내기 때문에, 다양한 현실에 접목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일들이 많은데, 이런 마음을 보다 비록 허구세계일지라도 세상사를 바탕으로 감정을 그려낸 소설을 통해 위로받고 싶었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할 수록 나도 사회의 나쁜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사회에서 받은 상처들을 원래 그렇다고 생각해서, 잘못됬다는 인식도 없이 나도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을까. 가끔씩은 소설이나 동화를 읽으면서 현실보다는 이상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쇼코의 미소는 총 7가지 단편들로 이뤄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감정이 정말 격렬한 감정이라고 하기 보단 미묘하고 소소한 감정들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읽으면서 나도 그때 이런 느낌이였던것 같다고 공감이 되는 감정도 곳곳에서 보였다. 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 그 당시에는 분주함에 가려져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소설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쇼코의 미소는 7가지 이어지지 않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 만남과 헤어짐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 공통된 테마라고 생각한다.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가 도쿄로 갈 수없게되었다는 편지와 함께 끊긴 연락. 그 이후 오랜 이별 끝에 만났을때, 소유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 쇼코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쇼코 또한 소유에게 빈정거리는 태도로 대하며 둘은 멀어진다.
씬짜오, 씬짜오란 2번째 단편에서는 투이네 가족과 베트남 전쟁 얘기를 하다 멀어지게 된다. 알고보니 투이 엄마인 응웬 아줌마의 가족이 한국 군인에 의해 죽음을 당했던 것. 그리고 주인공의 아빠 형은 용병으로 나이 스물에 베트남 전쟁에서 죽음을 당했었던 것이다. 식사자리에서 베트남 전쟁 얘기가 나왔고,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응웬 아줌마 가족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지 못했고, 자신의 형도 죽었다며 날을 세운다. 그리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나의 가족에게 가장 친절했던 응웬 아줌마와 그 일을 계기로 멀어지게 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도 엄마와 이모의 사이는 매우 각별했다. 이모에게 엄마는 아무조건 없이 받아주고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모의 남편이 북에서 지령을 받아 움직였다는 모함을 받고, 구형을 받으면서 이모는 종족을 감추어 버린다. 그렇게 둘은 이모에 의해 한 번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는 엄마가 이모를 불편해한다. 모처럼 방문한 이모의 집에서 이모의 남편이 병으로 오줌을 싸고, 그 오줌에 이모의 옷이 젖고 .. 어딘지 모르게 엄마는 이모네 집을 가는게 불편하고 이모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걸 이모도 느끼고 둘은 다시 멀어진다. 아주 크게 싸우지도 큰 일을 겪지도 않지만 둘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불편하고 마음이 멀어진다 미묘하지만 분명 멀어진다.
한지와 영주에서도 영주와 한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멀어지게 된다. 모두하고도 잘 어울리는 한지는 그 중에서도 영주를 특별히 아낀다. 그렇게 영주와 한지는 매우 좋은 친구가 되는데, 한지는 어느 순간 영주와 인사하지 않는다. 영주도 그리고 읽는 나도 한지가 영주로부터 멀어지길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먼곳에서 온 노래는 선택이 아닌 죽음에 의해 멀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단편들과는 차이점을 가진다. 나에게 큰 사람이였던 미진선배, 내가 아팠을때, 나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러시아에 유학온걸 후회했던 미진선배. 미진선배와 나는 내가 러시아를 방문했을때 미진선배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별을 맞게 된다.
미카엘라는 여자아이의 흔한 세례명으로 이 글에서 나의 이름이면서, 세월호에서 죽은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엄마는 항상 남에게 항상 양보하면서 살고 남을 항상 좋게만 보는 아주 착한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찜질방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은 미카엘라란 소녀를 세월호에서 잃었다고 말한다. 우연히 엄마의 딸 미카엘라와 이름이 같고, 미카엘라는 뉴스에서 비춰준 세월호 광장에서 엄마가 아닌 사람을 엄마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 글에서 엄마와 미카엘라는 실제 멀어진건 아니지만, 죽음으로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 노인의 손녀와 이름이 같고, 미카엘라 역시 세월호 광장에서 한 여자를 엄마의 모습으로 착각하면서 둘은 세월호를 중심으로 서로를 떠올리게 된다.
비밀에서 할머니인 말자와 지민은 누구보다 특별한 할머니와 손녀 사이이다. 말자는 딸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지민을 말자의 딸을 키웠을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랑과 시간으로 지민을 키운다. 지민도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할머니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손녀이다. 하지만 지민은 중국으로 선생님을 하러 떠나고 그렇게 둘은 헤어지게 된다. 이 글은 편지조차 잘 닿지않는 중국 시골에서 생활하는 지민이에게 보내지지 않는 편지를 쓰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을 테마로 한 쇼코의 미소를 보면서 사람과의 만남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때는 나와 정말 많이 친했지만 멀어진 사람들... 많은 만남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상처를 입고 일부러 거리를 둔 만남도 있었고, 처음부터 그렇게 가까운적도 없었지만, 상처입고 가까워질 기회조차 선을 그어버린 만남도 있었다.
사회에서 앞으로도 수많은 만남들이 있을것이고, 그 중 어떤 만남은 다른 만남보다 특별하고, 가까워지지만 어떠한 일을 계기로 혹은 거리로 인해 멀어지게 될것이다. '사랑하면 곁에 머물고, 아니면 떠날 것" "많은 것에 연연하지 말것" "항상 배우는 자세를 잊지 말것" 이란 말들이 있다. 만남에 너무 연연하여 너무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도 피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대체가능한건 아니라는것. 이 책의 대다수의 멀어짐이 그렇듯 어떤 만남은 소소한 이유로 멀어질 수 있다는것. 연연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잃었던 인연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인연들 그리고 멀어져가는 인연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한 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