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30대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 개인적으로 상당히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초반부였다고 생각한다. 친구 없이 혼자서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일축하 파티를 하던 주인공은 케이크에서 떨어진 딸기를 보면서 자신을 투영한다. 경쟁 사회에서 미끄러져서 발버둥치지도 않고 절망하고 있는 자신.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파견사원으로 전전긍긍 살고 있으며 30대로 접어드는 나이. 이런 자신을 누가 사랑할 것인지, 자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희망 없는 삶 속에 주인공은 살아가고 있었다. 자살로 이런 비참한 인생을 끝내려는 시점에 TV에서 자신과 다르게 화려한 삶에서 살아가는 라스베이거스의 모습을 보면서 30살이 되는 생일에 저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건 도박을 한 뒤,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에 ‘아마리’ 여분의 인생이라는 이름을 지으며 낮에는 파견근무, 밤에는 호스티스. 주말에는 데생에서의 나체 모델로써 돈을 악착같이 모으기 시작한다. 사실 에세이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한 인물이 일정의 과정을 겪으면서 변화되어 가는 모습. 이 책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정말 간단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키케로>’ 로마의 유명한 시인, 법정인, 정치인인 키케로가 말한 이 말이 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불행.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일정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는 지금의 경쟁 사회. 외모, 학력, 재물들로 사람들은 타인을 평가하고 쉽게 줄을 세운 뒤, 그들을 외부에서 평가한다. 스스로의 정립도 없는 상태로 외부의 기준을 따라가게 되는 사람들은 그 기준으로만 자신을 평가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29살에 3평에서 불안정한 직업인 파견사원인 그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 속에선 그녀는 패배자이다. 자신을 내세울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회 속에서는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감, 승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피라미드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아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아래에서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에게서 압박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견제, 경쟁하며 일정한 자리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 알렝 드 보통의 ‘불안’에서 ‘현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사랑을 받을 자리를 제한되어 있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에서 기인한다.’라고 기술하듯, 우리 모두는 사랑에 목말라 있는지 모른다. 위와 같은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을 도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외면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주인공도 자기 자신을 회피하는 극도의 낮은 자존감을 보이게 된다. 어떤 일을 달성할 힘, 목표 자체를 상실한 채 매일을 ‘그저’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책에서 흑백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신이라 표현한다. 타인과 같은 사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색깔이 없는 물체를 보는 자신. 이런 주인공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된다. 1년 후 자신의 생일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한 뒤 죽겠다는, 굉장히 자기 파괴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목적 후에는 자신의 삶에 변화가 다가오게 된다. 사실 라스베이거스를 선택한 것은 자신과 다르게 행복한 사람이 가득하고 사치적인 모습에 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도박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일까? 그들도 일정한 삶에서 도피를 택한 것은 아닐까? 물론 도박의 세계에서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 자기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지도 못한 주인공은 이런 사람들에게 반한 것은 아닐까.
돈을 모으면서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힘든 상황에 봉착해 있지만 스스로의 희망을 세우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전의 자신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점차 변화되어가는 자신.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크게 변화되어 가는 부분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기준은 제한된 목차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들의 기준엔 수많은 목차들이 생길 수 있다. 외모, 재산에서 떠나 오늘의 일을 달성했다, 미래의 희망 달성 여부, 친구들의 유무들로 말이다. 우물 속에만 있던 아마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기준을 변화시키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이 부분에서 깊이 공감이 되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 외부에서 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은 밖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자기소개서에 작성할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나는 타인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외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줄을 서든지 자신만의 길을 보여주든지.
세상은 한번쯤 살다 갈만한 곳이다. 세상에 나와 같은 존재는 없다. 아버지에게 주로 듣는 말이다. 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면한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가 나 자신이라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면서.
CF>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목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