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여행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새롭고 이국적인 세계에 대한 환상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환상을 발판으로 삼아 유럽과 미국을 갔다 온 후 넓어진 견문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이 책도 기행문의 한 종류로 작가가 경험한 여행에 대해 서술한다. 책은 새로운 세계인 브라질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구세계와 신세계가 이루어낸 상호작용들과 신세계가 간직해온 비밀스런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작가의 세밀하고 시적인 풍경묘사는 나에게 직접 체험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생소한 원주민들이 지닌 놀라운 관습들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작가는 여행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갖는다. 여행은 존재하는 것들의 색다른 조합일 뿐이며, 새로움으로 가득 차있다고 하는 것은 사기라고 말한다. 작가의 여행이 보여준 모험들은 이 책의 진실을 오히려 터무니없이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여행이 진행되는 과정과 저자의 결론을 본다면 여행에 대한 비판도 일리가 있다.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르게 작가의 여행은 자신의 여행과 모험이 갖는 의미에 대한 고뇌로 들어차있다. 민족학자로서 발견하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과 침범당한 본능에 대한 고뇌, 어디를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스스로의 전염성 때문에 생기는 연구의 어려움들, 그리고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원형적인 인간성에 대한 절망감들이 들어있다. 책의 배경인 브라질은 밀림 어디를 가더라도 어느 정도 문명의 영향이 발휘된 상태이다. 원주민들은 너무나도 줄어버려 자신들의 습속을 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으며, 관용이 없는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가속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은 작가에게 절망감을 안겨다준다. 왜냐하면 세상의 어디든지 서구문명의 영향이 없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형을 찾기 위해 서구를 들여다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인데다, 자신의 문명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객관성이 없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의 연구는 절망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여행 끝에 얻은 답은 연구에 대한 확신이기보단 자신의 처지에 대한 순응이다. 저자는 순수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대신에 그들의 발전수준에서 과거를, 그들의 변하지 않으면서도 무용한 관습들에서 미래를 보여주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저자에게 사회가 가야할 어떤 상태에 대해 암시해준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판단하는 민족학자들의 시선은 현재의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구문명과 존재하는 여러 문명의 형태를 조사하고 추측함으로써 어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스케치를 그려보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오지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닌 실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는 않는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좋은 책들은 항상 기존의 인식을 부수고, 새로운 생각을 세운다. 이 책도 그러한 책들 중 하나이며, 읽는 동안은 내가 사는 일상적인 깊이보다 그 너머의 깊은 곳에 있다 나온 것 같았다. 동시에 저자는 이미 내공이 쌓여 고민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점이 나의 무지를 나타낸다 해도 나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여행이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끝으로,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 동서양이 혼합된 사고방식에 대해 상상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브라질 밀림에까지 전해진다 생각하니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