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수상자인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 그려내는 건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영혼마저 끊임없이 검열하고 끝내 팔아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잔인한 시대와, 그 시대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섬세한 영혼들의 ‘울음’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건조하고 날카롭게 끊어지는 짧은 문체를 통해 이 과정을 마치 단단한 나무토막을 깎아내듯 보여준다. 곱게 갈린 톱밥이 바람결에 날리고 난 뒤 우리 모두가 조우하게 되는 건, 마치 우리의 부끄러운 영혼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들거리는 예술가의 영혼,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듯한 소설의 단조로운 듯한 구성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시계열’과 같은 구조에는 변화가 없지만, 소설가에 의해 재구성된 쇼스타코비치의 영혼이 그 단순한 흐름을 초월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야기는 어려워진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토로하기에 이야 예술가로서의 순수한 영혼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자아는 동시에 자신의 가정과 이웃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상처받는다.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가시적인 폭력을 전력으로 받아낸 그의 영혼은, 살기 위해 존경하는 선배와 동료를 팔아넘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파열음을 내며 서서히 허물어진다. 사람을 죽이는 당에 가입할 수 없다던 그의 마지막 저항과 신념이 스탈린도 아닌 흐루쇼프에 의해 허물어진 순간부터, 그는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정교한 유리공예와도 같은 성품을 가졌던 그는, 죽음이나 국외도피와 같은 ‘탈출’조차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다만, 오랫동안 그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는 단지, “너무 오래 살았을” 뿐이다.
그랬던 그의 삶이 던지는 물음에 대한 답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삶을 비난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와 다를 수 있는가.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오랫동안 어용 음악가란 오명으로 손가락질받아왔던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바쳐진 이 ‘헌정가’는, 명분과 이데올로기란 기치 아래 개인의 영혼까지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했던 잔인한 시대를 살았던 이에 대한 줄리언 반스 나름의 이해를 담고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거대한 권력 앞에서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시대의 영혼들의 대변자이자, 그 와중에서도 영혼의 ‘순수성’만큼은 지키고자 했던 ‘소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그 때문이다. 그의 겉모습과 행보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남겨진 유산 속에서 복원해낸 쇼스타코비치의 ‘진심’을 내세워 이를 반박한다. 암흑과도 같았던 시대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토록 분투했던 영혼을 그렇게 쉽게 비난할 수 있겠냐고, 모두가 죽거나 도망쳤던 그 시대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싸웠던 삶을 힐난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천상 예술가였기에 죽을 수도 타협할 수도 없었던 영혼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겠냐는 그의 물음은, 무겁다.
타협하거나 도망쳤던 이들은,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다만 홀로 외롭게 길을 걸어야만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아직도 수많은 다양한 평가의 갈림길에서 휘청거린다. 마냥 맑지도,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은 “그리 깨끗하지 않은 보드카”와 같은 삶. 그렇기에 책을 덮은 지금조차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복잡다단한 영혼. 변화무쌍한 시대처럼, 역사 역시 세계의 종말까지 그에게 계속해서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렇기에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다만 외롭고 괴로웠을 그 삶에, 줄리언 반스가 바친 문장으로 작은 위로만이라도 건네 본다.
“삼화음이군요.” 기억하는 사람이 기억한 것은 그것이었다. 전쟁, 공포, 가난, 발진티푸스, 더러움, 그러나 그 한복판에서, 그 위와 그 아래에서, 그 모든 것 속에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완벽한 삼화음을 들었다. 틀림없이 전쟁은 끝날 것이다 - 절대 끝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공포는 계속될 것이고, 부당한 죽음과 가난, 더러움- 아마 그것들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그리 깨끗하지 않은 보드카 잔 세 개와 그 속의 내용물이 만난 빚어진 삼화음은 시대의 소음으로부터 맑게 울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모든 이들과 모든 것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결국 중요한 것은 그뿐일지도 모른다.
-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