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일업방 강율형이 추천해줬다. 내가 별거 없다는 내용의 자기관찰일지를 인스타에 올린 직후에 받은 책이라 타이밍이 딱 맞았다. 지연쌤도 '민준아 니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인데?'라며 옆에서 거들었다.
책이 작고 얇아서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 점이 좋았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그냥 본인 얘기라서 그런지 그냥 얘기 듣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머리에 딱히 남는게 없는 것 같다. '아, 이렇게 평범하게, 찌질하게, 위로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 여기 한명 또 있구나'하는 느낌 정도? 다시 목차를 살펴보면서 내용을 반추해보니 미움도 노동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예원누나가 곁가지를 치며 생각났다. '그 사람은 단장 대접 받고 싶어서 단장 된거야'라고 비판 일색이었는데, 좋일업방 수업을 들으면서 나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관심받기 좋아하고 추앙 받기를 원한다는걸 깨닫게 되면서 그것도 결국 내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열렬하게 미워했던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그 사람과 다르다며 당당하게 행동했을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예원누나보다 잘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책의 내용은 그 사람 미워하고 안되길 바라는 것도 노동이고 감정 소모고 결국엔 내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 그만 잊어버리라는 거였다. 못된 사람이 항상 벌을 받지는 않는다면서.
사과는 친절이 아니다라는 대목도 기억에 남았다. 나도 뻑하면 '죄송합니다'가 입에서 연발될 때가 있다. 그런데 작가는 자기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시즌이 끝났다거나 이쪽 매장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라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그런데 막상 현실을 생각해보면, 내가 카페에 가서 음료를 주문했는데 '고객님, 시즌이 지난 상품입니다.' 또는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아닙니다'라는 말만 딱 들으면 뭔가 2%부족한 느낌일 것 같다. 여기에 '죄송하지만'을 붙이면 그 2%가 채워질 것 같다. 이미 죄송합니다에 중독된건가.
슬퍼하기 위해 돈을 번다. 감정에서 불순물을 빼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거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프거나 지인이 돌아가셨을 때,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슬퍼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쪼들리는 상황이라면 병원비는 어떻게 낼지, 조의금은 얼마를 낼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기뻐할 때 기쁘고 슬퍼할 때 슬프기 위해 돈을 번다고 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는 말을 딱 적절하게 잘 풀어낸 말같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 내용은 있었는데 내가 꽂힌건 따로 있었다. 좋일업방 수업을 들으러 갈 때마다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식사도 하고 가끔은 과자를 사기도 하는데, 거의 매번, 1~2천원 정도의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긴다는 것. 삼각김밥을 하나만 사려 했는데 그러면 나중에 배가 고플 것 같아 두개를 사고, 과자만 사려고 했는데 옆에 있는 초콜릿을 같이 사는 등. 견물생심을 경계하려 하지만 매번 '그래, 이정도야 뭐. 이런거 저런거 다합치면 한달에 1~2만원 될텐데 그 정도는 내 행복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잖아?'라고 합리화하며 사고 만다. 그리고 '이런걸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데 돈 아끼고 스트레스 받느니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삼각김밥을 고를 때 전주비빔과 참치마요 중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뒤통수를 떼려맞은 느낌. 사실은 이렇게 아등바등 절약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단 쓰고 보자는 마인드, 그리고 그 뒤에는 '모자라면 아빠가 주시겠지'라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마인드가 있었다.
내 시간을 선물할게. 나도 작가처럼 편지 쓰는 것, 받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작가는 그걸 좋아하는 이유가 '그에게 내 시간의 한 조각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