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배부되면 안타까운 자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5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14년 우리나라 중고생 자살 원인 1위(39.3%)는 ‘성적’이 차지하고, 이런 현상은 다른 국내외 연구기관 등에 의해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가 자살의 직접 원인은 아니더라도 우울을 야기하고, 우울은 자살을 매개하는 형국이다. 참고로 2014년 학생들의 고민 1순위는 학업(35.3%)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전반적 흐름이 심각한 상황이다. 반교육적 상황은 상위권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4년 자살 청소년 118명 중 26.8%가 학업문제로 자살했고, 이중 상위권 학생은 18.7%였다. 더불어 반교육적 현상의 영속화가 우려된다. 경쟁적 문화와 객관식 유형의 대학입시 방식이 장기간 바뀌지 않으면서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 자살이 10년 간 57.2%가 늘었고, 이는 OECD 가입국의 감소추이와 대비된다. 우리나라는 2013년 OECD 국가중 자살율 증가율이 2번째로 높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은 공부하는 존재로 정의된다. 따라서 공부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인 성적은 학생의 정체성과 삶에 중요한 기준이다. 안타깝게도 12년의 교육을 매듭짓는 수능 성적은 오랫동안 빈번하게 많은 학생들에게 여러 영향을 끼친다. 수능과 같은 시험이 “경쟁이 심한 시험”의 대표적 예인데(이하 ‘고부담 시험’), 이런 고부담 검사(high-stake test)는 시험(평가)의 결과가 시험 응시자에게 중요한 결과적 의미를 갖는 검사로서 보통 정답이 있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급, 졸업 등의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된다. 고부담 시험은 부정적 혹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리고 고부담 시험의 영향은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차원에 걸쳐서 발견된다. 광범위한 영향을 분석할 때, 고부담 시험을 정점으로 한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그 어떤 의미에서도 교육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 정서적 학대, 사회적 결핍을 조장하는 고문은 아닌지에 대해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가장 먼저 신체적 측면에서 고부담 시험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볼 수 있다. 고부담 시험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학생 개인에게 실질적인 물리적 흔적을 남긴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비율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생물·의학 문제는 단순히 건강을 해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생활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즉, 신체적 영향의 심각성은 그것이 타 영역에도 지대한 문제를 초래하는 확장성에 있다.
여러 물리적 여향이 있을 수 있으나 교육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바로 ‘뇌’와 연관되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고부담 검사의 스트레스가 가져올 긍정적 영향을 암시한다. 그러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말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는 ‘적당한 수준’에 한정되며, 중립적인 의미에서 ‘자극’으로 일반의 생각과 다르다. 따라서 고부담 시험이 야기하는 스트레스와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부담 시험이 주는 영향은 대부분 부정적인데,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여러 부정적 변화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뇌의 화학 반응에 영향을 줘서 과민반응을 초래하거나, 전두엽 회백질 부피를 줄여 학습 및 인지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해마 세포를 죽이거나 생성을 막아서 기억을 감퇴시키고, 편도체를 자극하여 불안하게 함으로써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뇌의 물리 구조가 바뀌는 영향이 있다.
앞서 다뤄진 ‘스트레스’는 현대사회에서 만병의 근원이라고 불린다. 스트레스는 그 정도에 따라서 장애 등 심각한 신체적 후유증을 남긴다. 정신사회적 스트레스와 스트레스질환에 대한 연구에서는 한 개인이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 유발된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스트레스 자극이라도 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위협’으로 간주하면 뇌 기능에 악영향이 된다. 상위권일지라도 최상위권을 향한 집착에 따라 상위권 학생들은 다른 학생보다도 더 많은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인다. 이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더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병리현상은 신체화 장애이다. 이런 증상은 “입시나 취업 등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시기 실제 병원을 오가야 하는 증상들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체화 장애인 ‘고3병’을 경험하는 학생이 70%에 달한다. 또한, 고부담 시험 자체가 주는 불안은 ‘시험불안’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분명 과도한 입시부담은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이로 인해 물리적으로 관찰되는 병적 후유증을 안겨준다.
신체적 영향이 미치는 심리적 영향들과 함께 다른 차원의 심리적 영향도 발견된다. 우선 이는 앞선 영향들보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시험 외에 교육문화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심리에 그들의 삶이 조성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학생문화는 수능 뒤로 현재의 만족을 유예하고, 공부를 강요받아 타율적이고 비주체적이며, 교육을 수단으로 간주해 도구주의적이다. 우리나라 고부담 시험은 수단화된 경쟁적 교육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속에서 시험을 치며 발달하는 학생 개인의 심리는 다음과 같이 인지적, 정서적 학대에 노출된다.
다른 모든 교육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고부담 시험은 학생들의 자아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특히, 시험은 필연적으로 성적을 낳는데, 우리나라에서 성적은 공개되며 상벌의 기준이 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감을 갖거나 만족감을 얻는다. 각종 학교의 위상이나 학교 내에서 학생의 지위 역시 성적(석차)에 달렸다. 문제는 성적이 적나라하게 ‘숫자’로서 표현된다는 점이다. 숫자라는 매체는 객관성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마치 시험 점수가 과학적이고 정교한 신뢰로운 지표인양 인식된다. 그러나 이는 수치맹신주의이다. 실제 점수는 오차를 포함하고 있으며, 검사의 타당도나 신뢰도는 완벽하지 않다. 성적이 실력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나아가서 그럼에도 교사를 포함한 성인들은 성적을 갖고 학생의 도덕성마저 판단한다. 이것은 오히려 잘못을 시정할 기회를 박탈하고, 특권의식을 길러주며 나머지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일례로 최근 일반계 고등학교의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은 위험수준이다. 고부담 시험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런 시험 점수에 따른 낙인 효과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모두가 목숨을 거는 고부담 시험의 성적이 불러오는 다른 측면의 영향도 있다. 먼저, 하위권 학생은 스트레스보다 소외감과 열등감으로 피해가 생긴다. 그 반대의 경우라도 경쟁 상대인, 본인보다 우월한 자에 대한 적개심이 생긴다. 나아가 성적지상주의는 학생들을 여러 부정행위의 유혹에 노출시킨다. 또한,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경쟁적 시험 맥락에서 학생들은 극단적 개인주의를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자아 탐색과 확립의 기회가 제거되고, 성적 지상주의로 인해 도덕성이 마비된다”고 했다. 실제로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중 소위 ‘모범생’이 종종 발견된다학생들은 극단의 경쟁 속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래서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공부를 잘하면 나머지는 모두 용서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학교라는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공동체의식은 제거하고, 성적에 불필요한(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부차적인’ 요소는 무시하거나 간과하게 된다. 고부담 시험은 사실상 학생들로 하여금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보게 한다. 교육기본법 제9조의 전인교육과는 반대되는 결과이다.
고부담 시험은 인지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시험으로 교수-학습의 효과성이 증명되고, 학습목표를 명확화하고, 최소 기준(표준)이 성취된다. 또한, 학년 올라갈수록 좀 더 고차적인 지적 활용을 요구한다. 특히, 수능은 사고력 등을 측정하고자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시험 준비 과정에서 인지 구조를 발달시킨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반대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면담에 따르면 학생들은 스스로 사고를 멈춘다. 모든 근원적, 존재적 궁금증과 개인적 취향과 흥미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서 시험의 정답을 암기할 뿐 비판적 생각이 부족하다. 이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흔히 지적되는 단점이기도 하다. 분명 시험은 공부와 일종의 필요악의 관계를 가지며, 많은 경우 학생들을 공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회적 비교를 하지 않는 시험에서 이런 효과가 관찰되고,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OECD 최장인데 학업성취도는 월등하지는 않음을 볼 때, 현행 시험 위주의 교육이 과연 인지적으로 개인에게 긍정적인지 그 효율성이 의심된다. 더불어 설사 학습을 촉진하더라도 교수-학습 과정이 전반적으로 시험에 맞춰져 ‘시험 대비’로 흘러가는 부작용이 있다. 결국 ‘고부담’은 인지적으로도, 특히 고등 인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로 시험이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임은 다른 측면에서도 관찰된다. 우선, 학습이 실종된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 담임, 부모를 위해 공부를 “해주고” 있다. 즉, 새벽까지 공부하더라도 이 학습은 교육에서 기대하는 ‘학습’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입시집착’이 발생한다고부담 시험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교사들은 ‘방어적 수업’으로 시험에 나오는 것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며, 학생들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인다. 이는 비주류 교과를 무시하는 교육과정 편성과 수업 시수에서도 관찰된다. 이렇게 수단화되고 편중된 지식은 ‘식민주의’ 학습태도를 만든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고부담 시험에 대한 자기지향 혹은 타인지향 완벽주의 성향의 학습태도는 시험불안은 적은 대신 학습에 몰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조절능력이 없는 경우, 많은 한국 학생들은 사교육 의존과 타율적 학생문화로 나타나듯이 자기주도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사회부과 완벽주의성향은 시험불안을 증대시킨다.
결국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고부담 시험을 위시한 교육은 “성격상 일탈학습문화인 셈"이다. 이런 학습문화는 고부담 시험으로 인해 변화될 가능성이 낮다. 고부담 시험이 정한 경로를 이탈할 경우 패배자로 낙인찍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적다(고 여겨진다). 고부담 시험은 용어의 정의상 주로 개인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발과 배치의 기능을 담당한다. 물론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학벌주의’로 점철된 ‘학력주의’ 풍토로 인해 그것이 더욱 강력한 결정력을 가진다. 결국에는 고부담 시험은 학생들이 입시공부 이외의 삶의 결핍을 겪도록 조장하고 있다.
먼저 우려되는 부족은 친구관계 등 대인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시험 “성적은 학생들의 인간관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고등학생들은 10명 중 4명은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으면 질투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더 나아가서는 학생들이 서로 성, 석차, 학교 종류에 따라 서로를 집단화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호 혐오감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는 단지 우등생만이 아니라 교우관계도 좋은 학생이 ‘모범생’이란 인정을 받게 되며 두루 친하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실질적인 소통이나 이해는 결여되어 기계적인 만남에 그친다. 여전히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서열화 된다. 성적이 개인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상위권에게는 질시와 하위권에게 멸시를 부여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성적을 준거로 친구를 사귀기기도해 학교(학원)생활에서 편향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또래 집단이 청소년의 자아 발달에서 매우 중요함을 고려할 때 자신과는 다른 (혹은 다른 처지의) 사람에 대한 몰지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공부’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여기에 편중한 공부(성적) 이외 생활을 무시하고 있다. 특히, 현재 고부담 시험을 위해 자원이 과잉, 편중 투자되면서 다른 부분들이 소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학생들의 스마트폰(29.2%), TV, 인터넷(12.5%) 혹은 게임 중독이 문제라고 지적된다(통계청, 2016). 그러나 이는 학생들이 다른 문화생활을 즐길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교육개발원 2003년 조사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은 ... 여가활동으로 ... 게임이나 전자오락을 가장 많이 ... 별다른 활동 없이 그냥 쉬는 것”으로 나타났고, 2009년 조사도 여가시간이 주당 2시간 미만인 학생이 34.2%, 문화예술 감상 등을 전혀 하지 않은 경우가 32.4%로 보고했다. 이와 함께 사회적 활동도 결여된 상황이다. 2009년 우리나라 학생의 봉사활동은 1분으로 독일의 11분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경쟁적 배경에서 협력을 학습할 기회역시 박탈된다. 또한, 시험 교과 외 비교과에 소홀하다. 물론 최근 도입된 학생부 종합전형, 입학사정관제, 자유학기제, 혁신학교 등으로 인해 일부 변화가 있으나 금세 왜곡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의존적인 학생들이 양산한다. 시험을 위해 나머지가 제거되면서 주체적 삶을 누리지 못한다. Homo Ludens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할 때, 편협한 사고와 세계관 형성의 위험이 우려된다.
교육과정의 숨겨진 면과 배제된 면에 초점을 맞춰 보면 고부담 시험은 구조적인 폭력적 영향을 개인에게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부담 시험의 영향이 단지 학교교육이 붕괴된다는 문제나 사교육비 지출이 과도하다는 경제적인 거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고부담 시험은 학생 신체, 정서 그리고 사회적 삶에 부정적 흔적을 남긴다. 이를 두고 “한준상은 ‘우리나라 학교를 폭력의 장이라고 지칭할 수 있으며, 학생들 간의 작은 폭력보다도 학교의 교육과정과 입시훈련 과정이 더 큰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이종각은 ‘교육전쟁’이라고 표현하며 그 기저에는 학력주의의 사회구조적 맥락이 있다고 했다.
즉, 학교교육은 수단화되었고, 학생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대상화된 것이다. 이를 부추기고 형성한 학력주의는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사고이다. 이는 과거의 성공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60년대 계층 이동율은 60%였고, 개인의 성공은 가문의 성공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경쟁적 교육 풍토와 학벌지상주의 속에서 비교육적 교육환경이 만들어졌다. 결국엔 “절대다수의 학생이 무기력한 태도로 ... 소극적으로 ... 맹목적으로 앉아” 있는 교실로 나타났다. 교육의 관심에서 벗어난, 학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고등학생 약 48%는 자퇴를 희망한다. 현재의 위인지학은 학생들의 주체적 삶을 저해하고, 학습자는 노동자 혹은 사회부품으로 인식되며 계속해서 소비될 뿐이다. 정리하면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초’고부담 시험은 이미 교육평가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혹은 교육적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측면 그리고 학생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개선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고부담 시험이 제도권 교육에서 이뤄지는 구조화된 폭력으로서 아동 학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CAT 제1조에 따라, 교사의 공무원 신분을 감안하면 이는 광의의 고문에 해당한다. 2011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최종견해(CRC/C/KOR/CO/3-4)의 권고 30.과 62.에서 경쟁적 교육이 아동에게 끼치는 여러 위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육열이 ICESCR 제1조와 제15조 그리고 CRC 제31조에 담긴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범법적 상황임을 사회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교육이 시험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종속되는 것은 문제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객관성의 환상에 빠져 점수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Bruner는 수업이론입문에서 교육목적이 인간발달임을 잊는다면 “평가는 기술적인 문제가 되어 효과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치있는 측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의미를 파악한다면, 우리는 보다 잘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험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든 학생들이 무엇으로 성장하고, 그 속에서 겪는 경험과 구성하는 감정과 생각도 중요하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 이 글은 교육평가 교직과목 과제물로 제출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