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의 스폰서님께서 추천해주셨다. 마크 맨슨은 김어준과 말하는 투가 비슷하더라. 굉장히 직설적이고, 정곡을 찌르면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음을 터뜨려내는.
니가 조또 정말로 원하는게 있으면, 그리고 그걸 목표로 잡았으면 나머지 것에는 신경을 끄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무언가에 신경을 쓰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더 나은 것에 신경을 쓰란다.
네트워크 마케팅 3개월 차인 지금. 이 말이 참 와 닿았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데 정작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한 놈으로 비춰지진 않을까를 더욱 많이 신경쓰며 제품도 권해보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랬는데, 오늘(12/18)은 이런 생각을 좀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우연찮은 계기로, 복무교육을 받는 곳에 칫솔과 치약 샘플을 다 돌리게 되었는데 사람들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것이다. 나는 '에이 색히 이런데까지 와서 영업을 하네 이거 신고해도 되나?'라고 생각하고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어 야 고맙다 잘 쓸게 이거 향 괜찮네' 라는 반응이었다. '내가 물건을 주니까 사람들이 고마워하네'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런 깨달음이 나에게 참 많은 용기를 주었다. 복지관 사람들에게도 샘플을 다 돌리던, 상상으로만 그리던 그 모습을 당장에라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뛴다. 실천하라 그러면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말이 생각났다.
기억에 남는 내용
좋은 삶을 살려면, 더 많이 신경 쓸 게 아니라, 더 적게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신경 끄기가 필수다. 신경 끄기야말로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엉망진창 이라는 것'과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니까. 신경 끄기는 무심함이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분이 더럽군 -> 기분이 더럽다는게 기분이 더럽군 or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현재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 덕에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기대에 못 미치고, 부족하고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 법정 스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냥 사세요. 열심히 살지마요 열심히 사니까 스트레스 받잖아. 그냥 사는거에요.'
"역효과 법칙" 부정 추구는 긍정을 낳는다. 가령, 체육관에서 고통을 추구하면, 그 결과로 건강과 활력을 얻는다. 사업에 실패하면,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를 알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뽐낼 수 있다. 힘들더라도 바른말을 하면, 상대의 신뢰와 존중을 얻는다. 공포와 불안을 겪고 나면, 용기와 인내를 얻을 수 있다.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면, 그에 따르는 부정적 경험을 극복해야 한다."
***목표에 따르는 역경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이 보기에 옳거나 중요하거나 고귀한 것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열받게 하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음을 의미한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에 신경이 쏠리게 될 것이다.
문제 없는 삶을 꿈꾸지마. 그런건 없어.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꾸도록 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성취감은 자신만의 투쟁을 선택해 감내함으로써 얻어야 한다. 해법은 부정적 경험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피하거나 구원을 바라서는 안된다.
행복에는 투쟁이 따른다. 행복은 문제를 먹고 자란다.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해결'이다.
***성공을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똥 덩어리와 치욕이 널려 있다. 당신이 선택한 고통이 당신을 만든다.
부정적 감정은 행동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신경생물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제안일 뿐 명령은 아니다.
이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감정만으로 내리는 결정은 대부분 형편없다.
인간은 틀리는게 일상이다. 따라서 당신이 성공적인 삶을 위한 기준이 늘 옳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헛소리를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삶의 일부다. 단언컨대, 화를 내는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 때가 자주 있다.
내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해서 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 -> 다른 사람의 시선, 나의 이익 유무
강한 책임감: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거절: 당신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거절을 통해 내 삶에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있다.
***죽음: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숙고하라. 어차피 언젠가 죽을거라면 두려움이나 민망함, 수치심 따위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결국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게 중요한 이유는, 그 행위가 덧없고 피상적인 엉터리 가치를 삶에서 싹 없애주기 때문이다.
"큰 책임에는 큰 힘이 따른다"
당신이 이기적이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당신 역시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난 살아오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게 내가 성공한 이유다 - 마이클 조던
결정적인 '정답'을 구할 게 아니라, 오늘 틀린 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조금 덜 틀리고자 해야 한다. 틀리면 변화할 수 있다. 틀리면 성장할 수 있다. 수많은 실패가 모여 발전을 이룬다. 성공의 크기는 얼마나 많이 실패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500년 전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며 경악하는 것처럼, 500년 후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우리가 확신하는 것들을 보며 비웃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돈과 직업으로 삶을 규정짓는 모습을 비웃을 것이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유명인은 떠받들면서 정작 소중한 사람은 업신여기는 행태를 비웃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도 불행할 수 있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돈으로 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벌면서 싫어하는 일을 할래? 아니면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얼마 동안 빈털터리로 지낼래?"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후자였다. 다시 물었다. "이걸 하다가 망해서 몇 년 뒤에 취업을 해야 한다면, 뭔가 대단한 걸 잃게 될까?" 답은 '아니'었다. 그저 경험 없는 빈털터리 실업자에서 '세 살 더 먹은' 경험 없는 빈털터리 실업자가 될 뿐이었다. 내 가치관에 따르면, 돈이 없거나 친구와 가족의 소파에서 자거나(그 뒤로도 2년은 더 그렇게 살았다) 이력서를 보냈다 허탕 치는 건 실패가 아니었다. 내가 세운 계획을 밀고 나가지 않는 게 실패였다.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뼈와 근육이 강해지는 것처럼,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정신력, 자존감, 공감 능력이 강해져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길은 수많은 선택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 가지에 몰입하라. 자유를 얻을 것이다.
"맘에 드는 일자리가 있어. 하지만 내가 그렇게 멀리 가버리면 어머니가 화낼 거야." -> 화자는 다른 사람의 문제나 감정을 자기가 책임지거나, 자기 문제나 감정을 다른 사람이 책임지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관계를 맺을 때 다음 두 가지 덫 중 하나에 빠진다. 하나, 타인이 자기 문제를 책임지길 바란다. "난 원래 이번 주말에 집에서 푹 쉬려고 했어. 당신이 그걸 알고 여행 계획을 취소했어야지." 둘, 오지랖 넓게 타인의 문제를 책임지려 한다. '그녀가 또 실직했다. 내 잘못이다. 내가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내일 이력서 고쳐 쓰는 걸 도와줘야겠다.'
우리가 관계에서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게 자신과 상대를 늘 만족시키는 거라면, 결국에는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무너져 내린다. 갈등이 없다면, 신뢰도 있을 수 없다.
너 자신보다 대단한 것에 신경 써라. 자신이 거대한 영원의 일부임을, 자신의 삶이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생성의 일부를 이루는 과정일 뿐임을 받아들여라.
당신은 이미 대단하다. 당신이 알건 모르건, 다른 사람이 알건 모르건 간에. 당신이 아이폰 앱을 출시했거나, 학교를 조기 졸업했거나, 멋진 보트를 샀기 때문이 아니다. 대단함은 이런 것들로 규정되지 않는다.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미 당신을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