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긍정성을 경계하고 부정적인 것들에서 의미를 찾는다. 현대에 와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무결하고 매끄러운 것들로 긍정 그 자체의 모습을 띄고 있다. 왼쪽의 작품은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으로 그의 ‘풍선 개’라는 작품은 5,840만 달러에 판매되어 생존하는 미술가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끄러운 것들은 공허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의미와 해석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에 감탄할 뿐이다. 저자는 여기에 속하는 것들로 페이스북과 같은 SNS, 셀카(Selfie)와 포르노그래피를 분류하고 있다. 모두 일시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주체들로 저항이 없으며 소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자연적이지 않은 것들로 모두 가공된 산물들이다. 한 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을 보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자연 대상을 직접적으로 향해있지 않다. 그때의 감정은 대상으로 인해 우리가 압도당하여 느끼는 감정으로 주체 자신을 향해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것이 해소되는 데에서 그 아름다움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거대한 자연으로부터 압도당해 사로잡힌 순간을 이성의 이념으로 극복하는 데에서 그 쾌감을 느끼며, 부정성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성립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나 자신에 기초한다. 타인을 향해 전시된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저자는 셀카를 공허함 그 자체로 바라본다. 세상에서의 맥락을 배제한 채, 클로즈업된 자신의 모습은 아무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 때 자신은 ‘그저 세계와 연결된 소통 네트워크 안에 있는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지나지 않는다.’ 매끄러운 화면 안에서 나의 껍데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비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만족을 위한 개성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반면, 클로즈 업 되지 않은 사진, 의미를 가진 사진들은 그 성격이 다르다. 시간을 극복하여 그 때의 순간이 빛으로 다가온다. ‘사물을 영원성의 측면에서 파악할 때, 정신은 영원하다.’ ‘이에 따르면 예술의 과제는 타자를 구원하는 데 있다. 미의 구원은 타자의 구원이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 혹은 미를 가진 것을 향유 하는 주체를 구원한다. 다만, 현재의 예술과 매끄러운 것들은 현재의 것들을 그 자리에서 소비하는 Instant의 성격을 갖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아름다운 것을 정리하면 ‘영감(inspiration)을 주는 것’이라 재정의할 수 있다. 한 순간 소비되는 것이 아닌 나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켜, 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사람마다 미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의미 없는 것들이 많다. 일상의 반복 속 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멋진 장면들이 많을지라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영화 ‘그레이트 뷰티’에서 던지는 말은 다르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움 그 자체일지 모른다고.
따라서, 아름다움은 내가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