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뇨에 대한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지 실제로 읽지는 않았던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의 처음 몇 장을 읽고는 단순에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작가들의 전기모음집의 형식을 띤다. 각 작가들의 전기는 볼라뇨에 의해 직접 서술된 것으로 작품 내에 등장하며, 마지막 작품 <악명 높은 라미레즈 호프만>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기적 형식은 이전에도 몇몇 작가들이 사용한 바 있는데,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전기적 작품들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늘어나는 텍스트를 이용해서 결국에는 작품 내에서 의미가 사라지고 경계가 사라지는 특성을 가지는데, 내가 이 책에 빠진 것도 작품의 확장성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작품의 내용은 아메리카에 존재하는 나치 작가들의 전기들이며, 이들은 하나같이 극우적 사상을 지닌 인물들이며, 그들 중에는 노골적인 악당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다. 전기가 이들을 묘사하는 방법은 예상과는 다르게 나치나 유태인, 학살 등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이들의 창작욕구와 그들의 개인사를 통해 묘사된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스트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개개인으로 지치지 않는 창작욕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창작물은 대체로 별 볼일 없이 조악하거나, 혐오스럽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이 실제로 존재할 필요 없이 허구 속에서만 암시되어지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들은 암시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한다.
내가 읽으면서 특히 매력을 느꼈던 점은 이 작품의 문체 아니면 형식일 텐데, 이 작품이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실제로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에 쓴 것과 같이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속임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하나하나 쓰였다고 쓰인 작품들이 실제로 쓰이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작품을 왠지 모르게 상상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모습들이 간략하게만 나타났다 하더라도 상상해낼 수 있었기에 감탄이 나왔다. 존재하지 않는 책들이 마치 다른 소설에 나오는 도서관처럼 무한하게 증식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는데,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이 날 매료하는 부분이었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 상호텍스트성을 들 수 있다. 전기적 형식을 취하여 그 끝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모호하게 하며, 그에 더해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의미의 이동이 생긴다. 몸소 상호텍스트성을 체험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책의 마지막 부분인 악명높은 라미레즈 호프만을 따로 늘려서 쓴 <먼 별>이라는 소설을 바로 읽었다. 내용의 차이가 엄청나진 않았기에 아쉬웠지만, 책이라는 물질적인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의 글쓰기가 어떻게 다른 글쓰기의 영토와 접하게 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내가 느낀 의미는 두 책의 사이 어느 지점 혹은 두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와 같은 지점일 것이다.
후에 논문을 찾아본 결과 이 작가가 기존의 문학권력을 비난하고 벗어나는 것에 대해 중점을 두었다는 것과 독자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욱 복잡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볼라뇨의 세계에 첫 발을 들였을 뿐이어서 그의 세계를 충분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이 책이 볼라뇨의 세계로 가는 인상 깊은 이정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