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너’는 ‘나’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너’가 펠리페이기도 하고 늙은 장군이기도 한 것처럼, ‘나’도 젊고 아름다운 아우라이기도 하지만 늙은 미망인 콘수엘로이기도 하다. 너라고 지칭되는 주인공 펠리페는 어느 늙은 미망인의 집에서 죽은 장군의 글을 편집하는 단순하고 벌이가 좋은 일을 하려 한다. 집에는 미망인과 토끼 그리고 아름다운 조카인 아우라가 같이 살고 있다. 펠리페는 점차 아우라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끌리지만, 동시에 늙은 미망인의 태도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는 마치 젊은 조카를 시기하고 착취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펠리페는 아우라와 같이 도망쳐 사랑을 이루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미망인이 예상 밖의 외출을 하게 된 어느 날 아우라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우라의 행동과 예기치 않게 나타난 미망인의 행동을 보고, 실은 아우라가 미망인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고, 그 실체가 늙은 여인의 젊음과 사랑에 대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실제로는 펠리페 자신도 콘수엘로가 아우라를 만들어낸 것처럼 늙은 장군의 욕망이 만들어낸 젊고 매력적인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읽으면서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특히 짧은 이야기가 2인칭으로 서술되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읽은 뒤에 2인칭 시점을 사용할 시 소설 속에서 ‘너’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독자를 지칭하는 것 같지만, 이 작품에서는 펠리페라는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며 철저하게 콘수엘로의 입장에서 ‘너’에 대해 서술한다. 하나의 입장만으론 사실을 구성할 수 없고, 한 점에 모아진 콘수엘로의 시점은 편향되고 또 거짓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2인칭 소설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전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2인칭으로 서술된 환상은 이야기에 전제된 모든 사건과 설정들을 파괴하기에 이르는데 어쩌면 펠리페의 존재조차 환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펠리페와 아우라의 사랑은 모두 노파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존재하며 둘 중 어느 하나도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내용은 모두 콘수엘로의 욕망이 입으로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모양새이다. 너의 취향과 너의 직업 너의 생각들을 모두 알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 콘수엘로가 바라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작가 푸엔테스는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어떻게 작품이 탄생했는지 말해준다. 어느 시기에 만났던 젊은 여가수를 본 기억이 후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되살아났는데, 그 두 시점 사이의 비어있는 시간이 창작의 배경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에게 가수는 비어있는 시간 동안 늙어버려 다른 사람처럼 인식이 되었다. 후에 여가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을 읽고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늙는다는 것은 많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과거를 떠올리면 어느새 나에게도 회한이란 감정이 생겨 함께하게 되었다.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잘못했던 선택들이 밤마다 떠오르고 좋았던 시기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아마도 늙음이란 이런 회한의 감정들과 지나간 순간들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거고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누구나 처하게 될 자연스러운 한계와 절망감이 이 소설이 주는 마지막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