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경우는 내가 여태껏 잊고 지낸 듯한 간접경험으로써의 문학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서의 체계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박해를 받았으며 그에 따른 제도적인 학살까지 경험한 유태인의 역사를, 그 당시의 긴박한 시선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 남겨진 상처의 잔재를 통해 표현해냈다. 그 과정이 비참한 역사를 돌아보면서 생기기 쉬운 과장적이고 신파적인 방법이 아니라 담담하게 기억을 뒤쫓는 방법으로 표현되었다는 게 눈에 띄었다. 기억이 녹화된 비디오처럼 단순하고 명확하게 되감기 되었다면 세계대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참혹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사건에서 배재되어 살아남은 주인공이 기억을 찾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유대인의 삶에 남겨진 정신적인 폐허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이끌어 냈다.
아우스터리츠는 어린 나이에 나치의 지배를 피해 영국으로 보내졌던 어린이 탈출 작전으로 영국으로 보내진 아이들 중 하나이다. 그는 어려서는 데이빗 일라이어스로 살면서 청교도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으나, 언제나 그들의 문화에는 적응할 수 없었다.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그의 진짜 이름인 자크 아우스터리츠에 대해 알게 되는데, 그 당시에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은 생소하면서도 기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독일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은 무시해 왔다. 건축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과거에 관련된 장소들을 새로이 경험했으며, 그가 다시 영국에 돌아온 뒤에 결국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체코로 떠난다. 그가 오래 전에 찾아갔던 요새가 실은 자신의 어머니가 갇혀있던 게토였고, 자신이 오랫동안 살았던 파리에는 아버지가 오랜 기간 망명해 있었다. 이미 그의 부모님은 전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과거를 찾으면서 결말 없이 소설은 마무리 된다.
화자와 아우스터리츠가 우연적으로 만나면서 전개되는 내용은 다소 개연성이 없지만, 화자가 작품 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단순한 서술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게는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는 부분은 사진들을 활용한 기억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요새에 관한 도면, 정지된 비디오, 도서관의 모습을 포함한 여러 건축물이다.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는 서사적 글쓰기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면서도 불가침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혼합의 방식이 글쓰기의 잠재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이 이미 소멸해버린 대상을 현재의 시간 속에 되살린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표현해낼 수 있는 의미를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기억으로 이뤄진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중대한 사건들이 아닌 사소한 기억의 단편이 중첩되어 인격의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러한 방법이 아우스터리츠가 오래전부터 연구하던 역사적인 사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아우스터리츠의 개인사를 통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재고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두에 말했듯이 간접경험으로써의 독서의 가치를 여실히 느꼈다. 겪어보지 못한 역사적 사건이 남긴 상처를 한 개인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느낄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