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길을 걷듯이 깜깜하여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야행」
스스로를 바라보는 공포
「야행」은 ‘교토의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를 가진 모리미 도미히코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이후 10년의 집대성을 담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1) 「야행」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의 괴담 5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괴담에서 은근하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모두 ‘나를 보았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괴담을 풀어내는 다섯 명의 인물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야행’이라는 동판화와 관련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때 귀신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스스로를 본다. 스스로를 보는 것에서 공포의 근원을 찾는다는 것은 「야행」을 전형적인 괴담으로부터 차별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날 밤 내가 보았던 것은 진짜 나인지, 무의식속의 나인지, 아니면 내가 잊고 있던 기억 속의 나인지 알 수 없지만 스스로를 마치 타자처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기묘한 소름은 「야행」만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몰입을 버리고 반전을 쫓다.
다섯 인물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특유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괴담도 그 괴담에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보는 것이 공포라는 점도 독창적인 공포를 조성했다기보다는 전형적인 괴담을 풀어내는 느낌이다. 혹자는 이 시시한 사연들이 몰입감은 떨어지지만 이를 견뎌내고 후반부까지 읽으면 그 뒤의 반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2) 그러나 반전은 독자를 전반부부터 독자를 흡입하여 절정의 순간에 제시 되었을 때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법이다. 독자가 반전을 위해서 앞의 김빠지는 이야기를 굳이 읽을 가치가 있는지 의구심을 느끼는 순간, 독자를 장악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야행」은 반전을 꾀하기 위하여 복선으로 밤이라는 배경을 설정하고 허구와 현실을 넘나들어 몽환적이고 기묘한 느낌을 주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는 구운몽식 반전이나, 사실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상상 속 일이었다는 식의 전개는 요즘 다른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전개다. 「야행」은 공포의 포인트를 개성적으로 짚어낸 대신 독자를 놀라게 할 반전 요소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아쉬운 점이 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전작과 「야행」
모리미 도미히코는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매직 리얼리즘’으로 이전부터 명성이 드높았던 작가이다. 다만 「야행」은 전작들의 벚꽃이 휘날리는 춘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평가 받는다.3) 또 모리미 도미히코의 문체는 특유의 고풍스러움과 독특함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만약 모리미 도미히코에게서 이러한 매력을 계속해서 보아왔고 또 강점으로 꼽던 사람이라면 「야행」 역시도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으로 「야행」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야행」은 읽고 나서 깊이 사색할만한 책은 아니다. 제목 그대로 마치 한밤중 여행을 하다가 지나친 터널처럼, 그 분위기는 무의식 어딘가에 설핏 스치기는 하겠지만 기억에 남아 되새김질 하기에는 미약하다.
1) “뜨거운 여름, 시원하게 식혀줄 서늘한 책 Best 3”, <경향신문>, 2017.07.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201402018&code=960205
2) 이윤주, “세계는 영원한 밤... 미스터리 인생들. [북 리뷰] 야행”, <한국일보>, 2017.06.30.,
http://www.hankookilbo.com/v/612441dc6e4246c38206ec5e6c0dc322
3) 김봉석, “[북리뷰]운명처럼 이끌려 보게 되는 진실”, <주간경향>, 2017.07.25.,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707171632511&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