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삼대장인 에밀 뒤르켐은 사회학이 사회과학이 되도록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사회학의 종주라고도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데, 그의 저서를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1897년에 출간된 책으로 12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쓰인 책이다. 형식상으로는 굉장히 체계적이지만, 내용적으로, 논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두께를 보며 자살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책을 썼을까 읽어나가면서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논문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생각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다 기록하고, 그 당시에 수집된 굉장히 정교하고 섬세한 통계자료를 삽입한 연구일지와 더 유사한 기록물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가설부터 시작해서 검증 과정과 결과를 짧게 보고하는 현대 논문과는 다르다. 이 책은 사회과학 논문의 틀을 정립시켰다는 데에서 가치가 있으며 자살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비사회적요인으로 인한 자살이 있다. 자살촉진계수라는 것이 일정 부분을 넘어서면 그것은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살을 정의하는 것은 동기가 아닌 결과이며,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죽을 것을 알았는가로 판단한다. 뒤르켐은 사망률보다 자살률이 사회마다 차이가 커서 각 집단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지표로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정신병에 걸리는 비율은 여자가 더 높은데 자살률은 남자 4 여자 1의 비율로 사회마다 일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현대인 19세기에는, 21세기 현대와는 다르게 조병, 우울증, 강박증, 충동적 자살 등 정신병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뒤르켐은 정신병과 자살은 관계가 없으며 대도시에서 많이 발생하고, 21세기 현대와 조금 다른 것은 가장 교양 있고 고귀한 계층에서 자살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의외였는데, 사회적인 요인으로 자살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면, 불평등과 가난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현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요인이 자살의 원인이긴 하지만 아래 계층에서의 자살이 적다는 것은 생계형 자살이 많은 현대 사회와는 아주 다른 것을 확인했다. 인간은 삶이 가장 쉬울 때 삶을 포기하고, 1년 중 날씨가 좋은, 비교적 따듯한 6달 동안 더 자살 한다는 것을 예시로 들었는데, 이도 21세기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뒤르켐의 주장은 세대차를 벗어나더라도 한계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그 당시의 정신병의 정의가 매우 좁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기에 정신병을 자살의 원인에서 아주 제외 시켜 버린 것은 지금의 시선에서는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 있고, 날씨와 자살률의 상관관계에서는 제한된 정보와 유럽만을 다룬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 다룬다. 그 첫 번 째 예시는 가족이다. 기혼자들의 자살면역성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가족의 영향이 자살 경향을 중화시켰거나 그 표출을 방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현대에서도 통하는 주장이긴 하다.
뒤르켐은, 결혼이란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결혼에는 건강, 재산, 도덕성과 같은 자격이 있고, 미혼자 계층에는 병자, 심신불능자, 가난한 자 등 여러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이 계층 사람들은 다른 계층보다 훨씬 더 (뒤르켐에 따르면) 열등하므로 기혼자들의 낮은 자살률은 가정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은 이미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흔하게 이성과 지식을 신봉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지식은 악의 근원이 아니라 치료방법이며 우리가 가진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고정관념이 일상사에 묻혀 사라지면 인위적으로 재확립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지침은 지식뿐이며 지식을 수단으로 도덕을 다시 세워야한다.’
‘오늘날 신경쇠약증은 허약함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우월함의 상징이다. 지적인 것을 애호하는 우리의 세련된 사회에서는 신경증의 사람들이 거의 귀족처럼 여겨진다.’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으며 자살의 개인적인 측면을 무시한 것, 그리고 신경쇠약증이 지식인의 우월성을 드러낸다는 당대의 시대분위기는 지금으로써 받아들이기 어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빈곤은 자살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근거는 계속해서 제시된다. 자살은 삶의 어려움 때문에 일어난다는 통속적인 관념은 사실이 아니며 자살은 삶의 부담이 늘어날수록 감소한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1. 이기적인 자살: 지나친 개인주의, 인간이 존재의 근거를 삶에서 찾지 못해서 일어난다.
2. 이타적인 자살: 인간이 사회로부터 유리되면 내면적으로 자살을 억제할 함이 약해지며 사회적 통합이 너무 강해도 마찬가지이다. 존재의 근거가 삶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아노미성 자살: 사회통제 방식과 자살률의 상관관계, 자살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해서 생기는 고통으로 자살한다. 산업이나 금융위기가 자살을 초래한다면 그것이 빈곤을 초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번영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며 이것은 집단적 질서가 흔들리는 위기이다.
이 부분에서는 당시 사회의 자살의 경향을 설명하기보단 있는 자료를 해석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이 부족하여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신앙에서 멀어지고 가족이나 공동체가 낯설게 느껴질수록 그만큼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되며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괴롭고 고통스런 질문을 하게 된다.
바로 몇 페이지 뒤에는 어린이는 덜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노인은 사회 없이도 자족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에 자살률이 줄어든다고 한다. 사회랑 떨어져있는데도 자살률이 낮은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오류가 있다. 책의 앞부분에는 30-40대가 자살에 가장 취약하다고 주장하다가 지표상 50-60대 노년층에서 가장 많이 죽는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등 논리적 오점이 많다.
당대 여성에 대한 시각이 어떠했는지도 글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 여성은 남성보다 공동체생활에 덜 참여하기 때문에 사회성의 영향을 덜 받으며 사회가 덜 필요하다. 여성은 사회적 욕구가 적기 때문에 쉽게 만족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연적으로 욕망을 제한할수 있으므로 결혼은 여성에게 욕망을 제한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어 남성만큼 유용하지 않다. 여성은 남성보다 본능적이므로 본능에 따라 안정과 평온을 찾는다.’
이러한 한계와 뒤따른 많은 비평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의미가 있다. 통계 자료를 이용한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한 것, 자살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이슈를 사회와 연결지어서 제시했다는 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계적인 연구방법을 제시하면서 후속연구의 길을 열어 둔 것이 그렇다. 2017년에도 아직 큰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는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끌어올린 뒤르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의 시대에 맞춰 이런 연구를 다시 해보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