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한국에서 ‘창의적인 사람’ 으로 인정받는 사람 중 하나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창의성으로 한국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청년들에게 전하는 여덟 단어를 담은 책이다. 기성세대의 흔한 질책이나 부질없는 위로가 아니라, 살면서 가슴 속에 간직하고 되새길 만한 표현과 내용이 많았던 책이었다.
저자의 키워드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어는 첫 번째 단어 자존이었다. 인생은 모범답안은커녕 정답이라고 부를 만한 것조차도 없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를 규정짓기 위한 기준점을 외부, 바깥의 시선이나 기준에 두지 말고 나의 내부에 두라는 말이 깊게 박혔다. 요즘 들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를 포함한 많은 20대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남들이 인정하는 무언가를 해야 나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당장 취업준비생 친구들만 보아도, 내가 그 일을 좋아하고 그 업무에 관심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취업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저런 조건을 따질 겨를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그 일을 하면서 본인이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단지 그 직업이 돈을 많이 주거나, 기업의 위상이 괜찮거나, 남들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 보이는 직업이기 때문에 취업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렇게 기준점을 외부로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다시 자신의 존재가치를 다른 외부 기준점으로 잡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외부 목표 설정의 무한한 반복 속에, 나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무엇이 행복한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꼭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한다면 외부의 평가와 기준점에 얽매이기 전에, 우선 기준점을 나 자신으로 먼저 설정하라는 말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존’ 과 연결되는 키워드가 ‘현재’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미래에 기준점을 세워두고 달려가는 ‘직선적 시간관’을 벗어나야 한다.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마치 강아지가 밥을 먹을 땐 태어나서 처음 밥을 먹듯 밥에 집중하고, 주인에게 꼬리칠 때 주인이 놀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미래는 예견하기 어렵고 내 미래에 영향을 미칠 선택지에도 정답이 없다. 결국 그 답이 오답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본인이며, 본인이 선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며 후회하는 것은 오히려 불행함을 더 부추길 뿐이다. 일단 선택의 기로에서 본인이 생각한 최선을 선택하고, 그 이후엔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인생을 스스로 돌아보는 기준점으로 ‘자존’과 ‘현재’를 배웠다면, 타인의 시선을 대하는 방법으로는 ‘권위’라는 마지막 파트에서 배웠다. 타인이 자신을 인정하게 하는 힘인 권위는 타인에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청년층이 나보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나에게서 권위를 강요할 때엔 그에 굴복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타인의 권위를 세워줄 거라면 그 사람의 인품과 됨됨이를 보고, 그 성품이 내가 인정할 만큼 바르거나 옳다고 생각될 때 권위를 인정하라고 했다. 넓은 복도, 고급 가구, 비싼 차, 위압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눌려 권위를 세울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저자는,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며 그들보다 시간이 많은 청년층이라면 동의되지 않은 권위에 복종해야 할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응원을 덧붙였다. 돈 많고 세력 있는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그 비굴함에서 오는 패배감을 약한 자를 괴롭히며 해소하는 세태에 젊은이들이 모두 저항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기성세대가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젊은이들이 지금부터 따라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저자의 생각에 십분 공감했다. 나는 그동안 돈이나 세력이라는 겉모습만 보고 상대방의 성품을 판단하지 않은 채 그들의 권위를 세워 준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했던 두 단어, ‘권위’였다.
박웅현 씨의 글에서는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그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에게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 분석력, 그리고 강한 어조는 아니더라도 사람을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을 여덟 단어를 통해 설명하면서도 거부감 없이 독자에게 스며들 수 있게 하는 힘. 여덟 단어의 가르침만큼이나 박웅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다. 이분이 쓰신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