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의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에 관하여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여성의 우정’을 주제로 자매애를 공유하고 이를 넘어 동성애까지 보여준 여성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메릴린 옐롬과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은 고대 그리스와 성경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00여년의 시간에 걸쳐서 여러 여성들의 사례를 조사하였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 관하여
동성애가 성행하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랑(에로스)와 우정(필리아)를 구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1)은 매우 흥미롭다. 여성들의 로맨틱한 우정은 대개의 경우 성애와는 관련이 없다고 치부되었고 덕분에 다른 여성에 대한 애정표현은 부적절하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애와 우정의 경계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기준이 육체적인 관계에 있다면, 플라토닉 러브를 우정과 구분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다. 작가는 동성 간의 가까운 사이가 동성애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동성에게서 성적인 것과는 무관한 애정 어린 감정을 느낄 수 있다.’2)고 주장한다.
한계점과 의의에 관하여
작가의 색다른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이를테면 과거 사료의 경우에는 여성이 우정을 나누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자료 역시 기록된 바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작가도 2000년에 걸쳐서 나타나는 여성 간의 우정의 역사를 담아내려고 시도한 만큼 그 깊이에는 한계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 역시 특정 인물이 나눈 우정과 그 서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시대를 나누어 큰 주제에 맞추어 여러 사례를 소개하는, 결과적으로는 매우 압축된 형태로 제시되었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우정에 대한 고찰이나, 특정한 관점에서의 학구적 접근이 이뤄지기보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던 가치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터져 나오는 지금, 이 책에는 여성의 우정을 통시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등과 우정의 관계에 관하여
오늘날과 달리 1880년대나 1890년대에는 로맨틱한 우정을 나누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3)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여성들 간의 스킨십이 남성들 간에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관대한 시선을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지적했듯이, 이성애자 남성들은 여성들은 낯설지 않게 하는 열정적인 포옹을 대체로 기피한다.4)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남성만이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보며 동성애가 성행했다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할 것 없이 동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그것이 순수한 우정에서 비롯된 애정이었다고 해도, 드러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완전히 반대로 역전된 것인데, 이 역전이 여성에게 관대한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러한 전환의 배경에는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한 페미니즘 운동이나 인종과 종교, 문화적 배경이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평등사상이 뒷받침이 되어야 했다.
또한 이러한 평등사상이 종내는 동성을 넘어 아직은 조금 논란이 있긴 해도 이성 간의 우정 역시 슬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오늘날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성별의 상투적인 구별을 넘어 서로를 친구로서 의지하고 아낄 우정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1)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정지인,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 서울: 책과 함께, 2016, 44-5쪽.
2) 위의 책, 176쪽.
3) 위의 책, 198쪽.
4) 위의 책, 3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