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시공에서 빚어낸 열린 사유의 누룩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지음 / 돌베개 발행)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된 이 책에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라는 말, 말고 무슨 사족을 덧붙이겠습니까…….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대학생이 될 만큼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읽은 때는, 새파란 대학생이 된 이듬해인 1988년이었습니다.
고색창연한 육백 년 전통의 학교에서 고색창연한 학문을 하게 될 줄 알고 들어간 대학과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은 자와 갇힌 자만이 정직하다’던 서슬 퍼런 시대를 지나며 죽거나 갇히지 않아 한없이 부끄러웠던, 그러면서도 하릴없이 젊음을 낭비하던 시절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아직도 한 편 한 편 책장을 넘길 때의 처음 느낌이 선연합니다.
맥주병의 두터운 바닥처럼 탁한 머릿속에서 뇌를 끄집어내어 선생의 글씨와도 같은 ‘샘터의 찬물’에 말끔히 헹군 듯한 독서의 느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늘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떤 구절의 무슨 내용이, 선생의 무슨 생각이, 제 삶의 어떤 부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읽는 이의 육신 전체에 한 구절 한 구절이 새겨드는 책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스무 살의 제가 밑줄 그었던 수많은 구절 가운데 어렵게 몇 개를 골라 봅니다.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에게 자기를 설명하려고 하는 충동은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하는 점에서 그것은 어차피 나 자신 개인적인 문제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떠한 사회이든 대중은 다수이며 동시에 선량하고 지혜롭습니다.”
“저는 십수 년의 징역살이 그 일인칭의 상황을 살아오면서 민중이란 결코 어디엔가 기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이 ‘창조’되는 것이라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이 곧 민중의 표상이 아님은 물론, 민중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교가 되어주지도 않습니다. 민중을 불우한 존재로 선험(先驗)하려는 데에 바로 감상주의(感傷主義)의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민중은 당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적 역량’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얼마만큼 달라졌을까요.
글쎄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여전히 휘청휘청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했고, 여전히 하릴없이 젊음을 낭비했습니다.
배운 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삶은 언제나 부끄럽고 겸연쩍습니다.
그래도 왠지 저의 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전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개인사에서 BC와 AD 만큼의 큰 차이입니다.
스무 살의 어느 가을 ‘덜컥’ 하고 이 책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누군가도 오늘 그런 행운을 만나시길 빕니다.
서지적인 정보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이 책이 처음 발간된 해는 1988년, 십 년 뒤인 1998년에 기존에 누락된 편지들과 저자의 메모 노트 등이 추가되어 증보판이 발간되었습니다. 다시 십 년을 더 지난 2009년 가을의 오늘, (직업의 특성상 무슨 책이든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부터 챙겨 보게 되는 좋지 않은 버릇을 가지게 된 바)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의 판매지수를 살펴봅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십 년이 넘은 책으로는 대단합니다.
선생의 사색을 나눈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그것을 같이 나눈 이로 흐뭇합니다.
명륜당의 은행잎이 대성로를 가득 덮었겠지요. 젊음을 분탕했기에 그 시절이 더욱 그립습니다.
후배님들의 ‘연학(硏學)에 진경(進境)이 있으시길 빕니다.’
양석환 /페이퍼로드 편집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