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중학교 때였다. 그 때는 별 감흥이 없이 단순한 여행일지 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미도 없었고 작품이 지닌 가치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쯤, 한국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나는 그때서야 '열하일기'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이후 꼭 한번 정독해야 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 방학을 맞이하여 찬찬히 읽어 보게 되었다.
열하일기는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책이다. 1780년에 청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으로 참가하여 연경(북경)과 열하(남만주지역)을 탐방하면서 쓴 일종의 견문록이다. 단순한 여행 기록 뿐만 아니라 느낀 점과 사회 풍자, 그리고 주민들이나 하인들과 나눈 대화도 기록되어 있어서 아주 몰입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당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조선에 더 넓은 세상을 깨우쳐 주었고, 발달된 기술과 실용적인 학문을 소개하여 정조가 따로 박지원을 불러 물어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처럼 허풍이 많이 섞인 견문록과는 다르게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조선 측 사람들을 무시하던 청나라 하인들을 조선 하인들이 혼 내준 얘기나, 청나라가 부럽지 않고 조선에서 태어난 게 좋다는 장복이와의 대화를 삽입하면서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한다든지, 근본이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분명히 청나라의 문물 중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수용할 것을 수용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함을 주장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나고 청나라와 공식적으로 국교를 맺었음에도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존경이 남아있어 청나라를 부모의 원수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지금까지 <춘추>, <사기> 등을 그대로 수용해서 중국 본토의 문물만이 위대한 것이고, 한(漢)족 만이 진정한 선민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었을 때였다. 그래서 만리장성 이북의 몽골족이나 만주지역의 금나라 등은 중국의 정식 왕조로 생각하지 않고 오랑캐가 잠시 점령했었던 암흑의 시기이며, 명나라는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중국의 주인이 된 정의로운 한(漢)족의 왕조라며 치켜세웠다. 그 정도로 조선은 오직 명나라만을 따르고 명나라 이외의 나라는 그저 오랑캐일 뿐이라며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명나라를 청나라가 멸망시켰고 더군다나 조선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삼전도의 굴욕' 일화를 남기며 자존심에 막대한 상처를 입혔으니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청나라는 오랑캐일망정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좋은 법률과 제도를 억지로 고치지 않고 차지하였다. 그 결과 만주족이 본래부터 지녔던 것처럼 되기에 이른다. 이것을 본받아 박지원은 '천하를 위하는 것이,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비록 그 법이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취하여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좋은 것을 배우고 우리나라의 실상에 맞게 적용해야 함을 역설했는데, 이러한 사상은 실학이라 불리며 박제가, 유득공, 정약용, 홍대용 등 조선의 걸출한 실학자들을 양성하게 된다. 당시 선비들이 조금이라도 국제정세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조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주변국들에 비해 얼마나 뒤쳐져있었는지를 더 잘 깨우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충분히 좋은 나라지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용후생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나라가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게 기술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고, 명분에만 매달리지 말고 좋은 제도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좀 더 좋은 나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 바로 이제 나의 세대가 미래를 이끌어 가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