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20~180302
영빈이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게 된 책. 군대가서 책을 100권 넘게 읽고 나왔다길래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빌려 펼쳐보니 더 놀랍다.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아예 공부를 했다. 이러니까 자기 돈주고 책을 살 필요가 있구나.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 해보고 저자의 의견에 반박도 해보면서 제대로 된 책읽기를 했겠구나.
주제를 선택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철학과 과학 거기서 찾아낸 이상 그리고 현실, 그 사이의 삶 그리고 죽음, 그리고 나.
각 주제마다 작가가 인상깊게 읽은 책들이 소개되었는데 나도 한번쯤 들어본 책들과 읽어봤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체 게바라) 책들도 있었다. 책 전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내가 체 게바라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것에 대해 변명거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아직 내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이 책이 나를 설득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기억에 남는 구절>
- 불편함을 참고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 세상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청결과 불결로 나누고 자기가 선, 정의, 청결의 편에 섰다고 단정하는 사람들 -> 마음의 위안을 얻음 -> 나약한 사람들 -> 세상과 벽을 쌓고 작은 세계 안에서 완전함을 향유하려 한다.
- 붓다: 스스로에 의한 구원 (M) 내가 기독교보다 불교를 선호하는 이유. 기독교는 예수님(타인)을 통한 구원 - 수동적, 불교는 본인의 수양과 깨달음을 통한 열반 - 능동적
- 서구 역사의 변화: 진리 = 고대&신화 / 중세&유일신 / 근대&이성 / 현대&반이성
세계대전과 함께 근대가 마무리되며 인류는 깨달았다. 종교나 이성과 같은 단일한 진리에 대한 믿음이 인류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말이다.
- 플라톤 주의: 둘로 나누고 하나에만 가치를 두는 것. 그리스도교, 이성중심주의 모두 본질적으로 플라톤 주의이다.
- 니체: 이상만 좇다가 현실을 망쳤다. 신은 죽었다 ->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로 돌아오라.
- 세계가 있고 너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세계를 그려낸다. 모든 것은 네 마음의 반영이고, 네가 만들어낸 것이다.
- 나 = 의식
- 인간의 눈과 입은 모났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내야 하고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그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사회, 국가, 종교, 가정, 학교, 직장이 요구하는 의무와 평가에 저항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에게 전문성을 강요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로만 당신을 평가하려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이 전부인양 맹목적으로 살아가서는 안된다.
- 만유인력: 만물은 인력이 있다. F = M x m / R^2 인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그래도 우주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주의 존재는 인간의 의식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 자기 삶의 입법자
- 지금은 안다.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시간들도 개인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말이다.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어려운 철학책과 씨름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사색하는 아름다운 방법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는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 판단을 구분해서 다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 판단에 종속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사회가 규정한 정답과 다를까 봐 전전긍긍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학문이 지금까지 밝혀낸 정답을 당신이 맞출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숙고함으로써 판단하게 된 스스로의 전망을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현시대가 구획지어놓은 과학과 학문이라는 영역 안에 머물며 거기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놀라워하며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합리주의라는 근현대의 기준 안에 당신의 드넓은 영혼을 구겨 넣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