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체 해방이 독일, 스웨덴이 아닌 한국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며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책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학, 정치, 사회학, 언어적 접근 등 분야도 다양하다. 단언컨대 나는 이 책이 조만간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읽은 그 어떤 페미니즘 책보다 강렬하다.
저자 하리타는 독일에서 유학하는 한국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트라우마를 극복한 이야기와 함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해방할 것을 주장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소유물이다. 몸은 딱 하나씩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주어지지만 이것을 대하는 관념은 사람과 문화마다 다 다르다. 어떤 때는 성스럽고 소중하게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지만, 어떤 때는 사사로운 욕정이 머무는 속세의 그늘이 된다. 몸은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게 평가된다. 근육이 단단하게 박힌 한 남성의 몸은 강함, 힘과 연관되지만 풍만한 여성의 몸은 아름다움, 섹시함, 그리고 더러움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의 몸을 둘러싼 관념 중 대부분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나온 것이다. 불행한 것은 여성 스스로도 이러한 관념에 적응하여 자신의 몸을 숨기고 창피해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지 않는다.
만일 하리타가 페미니즘 계에서 권위있는 한 백인 여성이었다면 나는 이만큼 책에 푹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브라나 화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신체 상품화에 반대하고, 월경컵을 쓰는 여성은 이미 페미니스트 진영에 많다. 나신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생리대를 펼쳐 보이는 등의 퍼포먼스는 페미니즘 운동을 한 번이라도 목격했으면 다 아는 저항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어디에서 보아왔던가. 이는 뉴욕타임즈나 리브라씨옹과 같은 외신을 통해 간접적으로 친숙해진 페미니즘의 모습이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무대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 물론 하리타가 이토록 자유로운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독일에서의 공부와 생활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녀도 한국의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으며 대학까지 다닌 사람이다. 1, 2부의 심리 치료 경험담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트라우마는 한국에서 자라는 여자아이의 대부분이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법한 기억들이다. 그렇게 책의 전반부에서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한 그녀는 후반부에 자신의 누드사진 찍는 취미와 자위 습관까지도 털어놓는다. 이때 더욱 빛을 발하는 건 그녀의 글쓰기. 거리낌없이 자신을 보여주고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 그녀의 글은 질투심마저 들게 할 정도로 멋있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을 반년 전, 스웨덴에 있기 전에 읽었더라면 나는 더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성지식에 관해서는 심각한 저학력자였다. 학교에서는 '보건'이 아닌 '과학'의 관점에서 일차원적인 성교육만을 받았고, 집에서는 아예 화제로 삼지 않았다. 포르노나 섹스는 내 안의 무언가가 '더러운 것', '무서운 것'으로 규정했다. 여자인 나는 성욕으로 가득 찬 남자 짐승들과는 달라서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많은 공부와 조언(?)들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 페미니즘에 눈 뜨게 되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스웨덴에서였다. 백 년의 여성 권력 신장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만난 유럽 각국의 친구들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아침을 먹든, 티타임을 갖든, 술을 마시든 언제든 우리 몸과 성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게이인 네덜란드 친구는 "언제부터 게이였냐"는 내 바보 같은 물음에 "너는 네가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는지 알았니?"하고 반문했다. 동성애자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가 충격받는 것을 보고 재밌어하던 그 친구는 많은 성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었다. 또 다른 스페인 여자 친구는 내 몸을 내가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며 여성을 위한 포르노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Xconfessins.com 이었을 것이다.) 다 같이 해변에 갔을 때 스페인 친구와 독일 여자 친구는 거침없이 가슴을 드러냈다. 모든 것이 충격인 스웨덴 생활은 서서히 나를 바꿨다. 갑갑한 브레지어를 하지 않거나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바깥에 나가도 어느 새 편해진 것이다.
가치관의 전환은 단순히 머리가 따르는 게 아니다. 온 몸을 다해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더디다. 스웨덴에서 벌써 반 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고 신기해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 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 참 옷을 못 입는다', '화장을 못한다' 하고 생각하고 연애를 안 하는 친구에게 '남자친구' 좀 만들어라고 권한다. 무엇보다도 아무 덧칠도 하지 않은 내 몸을 백지 그대로 사랑하는 데에 서툴다. 이제 나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그릴 때다. 자연의 물감만을 담은, 나만의 그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