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고전이다. 첫 챕터를 읽다가 몇 번을 포기한 만큼 인물들의 어투나 스토리 전개 속도가 한국 정서랑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 느긋함에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결말까지 단숨에 읽게 될 정도로 작품 몰입도가 엄청나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어 책뿐만 아니라 영화로 접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중에는 각색을 통해 원작과 거리가 멀어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원작에서 제인 오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현대식으로 바꾸지 않고, 당시의 모습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비합리적인 사회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이 이것을 꼬집기 위한 ‘사회풍자소설’로 이 책을 쓰진 않은 것 같다. 가문, 부, 지위, 외모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한 덕에 오만한 남자와 그만큼 신분은 높지 않지만 자존심 세고, 오만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말 그대로 러브 스토리가 주를 이루기는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특히 엘리자베스 베넷의 대사가 대부분 그러하다- 위트 있는 대화의 이면을 살펴보면 발전하는 시대상의 어쩔 수 없는 한 단면이었겠지만 불합리한 점들이 많이 있다. 굳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렇다는 뜻이다.
작년 9월, 영국 정부가 새로 선보인 10파운드 지폐에는 제인 오스틴의 얼굴이 실려 있다. 그녀의 초상화와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역시 독서만한 즐거움은 없어!”라는 문장도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사의 주인공인 캐롤라인 빙리가 다아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치 독서가 자신의 취미인 양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서 한 말이기 때문에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제인 오스틴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받아쳤다. 그만큼 영국의 정서를 대표하고 자랑스러운 영국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책은 대부분 구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첫 소설인 ‘오만과 편견’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는 엘리자베스처럼 되고 싶었던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이 작품은 평생 독신으로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소설가’로 살았던 작가의 대리만족에 불과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 당시 여성과 부모의 결혼 스트레스-현재의 우리나라로 치자면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와 비슷하지 않을까-와 그렇게 멍청하게 굴던 베넷 부인이 세 딸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평온해지는 부분처럼 현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매우 상세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베넷가의 다섯 딸의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소심하고 마냥 착한 첫째, 할 말 다 하는 둘째, 연애나 외모 가꾸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며 다른 타입의 동성을 깔보는 셋째, 남에게 쉽게 휘둘리는 넷째, 이성에게 헤프고 나대는 막내까지 이런 모습은 어느 시대, 어디에서도 보편적인 유형들이다. 작품 속의 ‘러브라인’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를 보며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대입해보며 나름의 고찰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고전으로 인정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읽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