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의하는 것은 나,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이 낭만주의 시대에 외친 질문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1)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은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도 번역의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기념비적이고 유명하다. 이 한 문장에서 당시의 시대상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결혼이 여성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하고, 또 전부라고 보아도 무방했던 시절. 숙녀가 신사의 청혼을 한 번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은근히 청혼을 거듭 부추기기위한, 여성의 우아한 관례이자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엘리자베스 첫 청혼을 거절하며 한 말은 깔끔하고 단호하다.
“그러니까 이제 저를 남자를 애태우는 우아한 여자로 생각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2)” 스스로를 사회적 규범에 따르는 ‘우아한 여자’라는 말보다는 자신의 소신과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정의하는 엘리자베스의 태도는 그 자체로 당당하고 우아하다. 본인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자유로이 생각하여 스스로를 정의하는 통찰력은 오늘날의 현대인과 비견해도 대단하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제인 오스틴이 낭만주의 시대에 외친 그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물음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본인을 정의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외칠 용기가 있는가?
고전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만약 단순히 상류계급의 부유한 신사가 변변찮은 시골 여성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반하여 결국 결혼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였다면, 『오만과 편견』은 오늘날 고전으로 꼽히지 않았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과 『오만과 편견』이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탄탄한 구성과, 좀처럼 균형을 잃지 않는 공평한 중심, 그리고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캐릭터 덕분이다. 『오만과 편견』은 책의 모든 부분을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에만 치중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반부는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제인과 빙리 씨의 이야기로 페이지를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엘리자베스와 엮이는 다양한 인물들, 이를테면 다아시, 콜린스, 위컴 등은 제인과 빙리 이 두 인물의 관계에서 파생되어 엘리자베스와 관계도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묘사된 인물 콜린스에게 대하여, 엘리자베스는 샬럿 루카스가 사랑과 같은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이 실망스러울지언정 그것이 ‘어리석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샬럿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지만 그것이 샬럿의 선택임을 존중한다. 비록 작가 본인은 사랑 없는 결혼에 회의를 느껴 하루 만에 청혼 승낙을 번복한 전적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을 함부로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각자의 가치가 각각의 무게와 고민과 소중함을 가진다는 것을, 제인 오스틴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성장하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당당하고 멋졌지만 그러한 오만 때문에 다아시를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더욱 중시하는 무례한 청혼을 하고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아시는 부와 당당함으로도 엘리자베스를 사로잡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스스로의 오만함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며, 결국 스스로의 오점을 고쳐나간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비현실적이고 천진난만한 해피엔딩처럼 보인다고 해도 서로를 오만으로부터 성장시킨 것은 『오만과 편견』을 다른 단순 로맨스 소설들과 차별화하는 요소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제인 오스틴의 메아리
오늘날 미투 운동이 화제가 되면서 ‘데이트 폭력’의 문제 역시 민감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에서 나온 대시는 더 이상 로맨틱하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한 채 본인의 감정만을 어필하는 것은 배려 없는 폭력임을 알기 시작한 사회가 되었다. 제인 오스틴은 낭만주의 시대 때부터 이미 한 사람이 가지는 감정의 가치와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사회에서 ‘스스로가 정의하는 자신’의 의미를 알았던, 합리적이고 진실한 작가였다.
1) 제인 오스틴, 고정아, 『오만과 편견』, 서울: 시공사, 2016, 11쪽.
2) 위의 책, 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