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가를 묻고 있다. 현대에 와서 신의 말씀인 운명에 대해 논하는 것은 낡은 주제일 수 있다. 운명을 논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면 단어를 운명 대신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등으로 바꿔보면 괜찮은 주제가 될 것 같다. 관념, 이데올로기, 관습 등은 현대사회의 일원인 우리의 모든 것을 알게모르게 지배하고 있다. '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이상하다' 같은 간단한 관념이나 '올바른 정치형태는 민주주의다.','인간의 성별은 남과 여로 나뉜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아왔다.'와 같은 논쟁적이고 복잡한 역사를 수반한 관념, 그리고 '사람은 8살이되면 학교에 가야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를 가야한다.', '대학교를 나오면 취직을 해야한다.', '때가되면 결혼해야 한다.' 등의 일상에 직접적인 관념 등이 우리 일상에서부터 생각까지를 지배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 인생은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 믿음 조차 일종의 만들어진 관념 또는 사회에 의해 주어진 운명일 수 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에 들어서는 나는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고 몇년이 지나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내 주변을 둘러쌀 것이다. 이 모든 게 현대판 신의 운명이 아니면 무엇일까. 내가 하는 행동이나 선택에 내 자유의지는 얼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