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 작가의 여러 단편소설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오직 두 사람: 이 묵직한 단편소설이 김영하 작가 단편소설집의 제목이 된 셈이다. 오직 두 사람은 아빠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삶이 성립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현주는 자신의 아빠에게 편애를 받는다. 아빠는 다른 가족들은 놓고 현주만 여행을 가고, 외식을 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또, 둘이서 영화를 보고 매일매일 그날 하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저 단란한 부녀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현주의 아빠는 현주의 엄마와 이혼을 하고, 암으로 죽음을 기다린다. 현주는 그동안 아빠와의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로 인해서 연애, 대인관계를 포함한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 현주가 쓴 편지의 말미에 담겨있는 아빠라는 그림자를 벗어나 홀로 세상을 맞서 싸워 나가야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막막함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 소설을 보고 관계를 이루는 두 사람의 권력이 불균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는 B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를 보장한다. 그래서 A는 자신의 모든 삶의 방향을 B에게로 맞추고, B가 A에게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A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된다. B는 A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A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A는 그저 자신의 본질적인 고독함을 달래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존재일 뿐이다. A가 죽으면 아쉽겠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떤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A가 되기도 B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 정도가 약할 뿐이다. 한 명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아야겠다.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부재가 일으키는 상실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아이를 찾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카트에 태운 세 살짜리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부부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를 찾기 위해서 전단지를 발행하고 뿌리는데 십년을 보낸다. 그리고 십년 후에 아이는 다른 여자의 손에 자라다 다른 이름을 갖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아이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아내는 조현병으로 인해 미치광이가 되었고, 집은 전단지만 가득하고 십년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서 엉망이다. 부부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돌아오고 나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한 가족의 운명이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나도 잃어버린 것을 힘겹게 찾고 나서의 허무함을 안다. 이는 원래의 모습, 전에 간직했을 때의 느낌이 사라졌거나, ‘잃어버린 것을 찾기’라는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어버린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허무함이다. 공을 튀기면 원래 제 높이로 완전히 튀어 오르는 경우는 없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공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나락으로 떨어지면,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인생의 원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원점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원점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의미를 갖기도 하고,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원점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족, 연인 등 다양한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삶에 원점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발점이 없다는 것은 완벽한 끝에 다다라야한다는 강박을 없애기도 하고, 많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 서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 소꼽친구였던 인아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책의 서진은 항상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는 인아를 구하리라 맘먹는다. 그러나, 막상 인아의 남편이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자 인아를 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원점이 되어준 인아로부터 벗어난 서진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원점’이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안녕과 안전을 지독하게 추구하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옥수수와 나: 김영하 작가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 작품이다. ‘옥수수와 나’는 인용, 대사, 사건의 전개 모두가 유기적이고 치밀했다. 옥수수와 나는 불륜의 연속이 사건의 핵심 소재이다. 자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던 것, 남들만 다 아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이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인상 깊었던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너무 흡입력있고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섹스라는 관념을 털어내기 위해서 섹스를 한다’라는 표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정말 참신했다.
최은지와 박인수: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씹힐 존재’가 될 수 있다.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누군가를 험담하는 것에서 모종의 동질감과 묘한 희열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안주거리가 될 것을 걱정해서 스스로 답답해하고, 본래 자신의 모습을 숨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씹힐 거라면, 내 감정과 사고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내가 타인의 평판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본 계기를 마련해줬다.
신의 장난: 밀폐된 공간에 갇힌 두 남자와 두 여자가 어떻게 살아나가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법과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남녀 두 쌍이 갇혀있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성과 충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 작가의 천재성을 새삼 느끼게 해줬고, 단편 하나하나가 매우 흡입력 있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재미와 신선함 모두를 느끼고 싶은 학우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