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최근에 가장 핫한 단어이다. 양성평등, 여성 가족부, 페미니즘, 데이트 비용, 성폭력, 군대,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 경력단절, 맘충 등 페미니즘 하나에서 뻗어 나오는 여러 갈래는 그 하나가 넓고도 깊다. 나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여성이고,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페미니즘은 가장 관심사에서 먼 카테고리 중 하나였다. 강남역 살인사건, 메갈리아, 일베 등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수호하는 문제가 사회와 더더욱 교집합이 많아질수록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등학생인 내 동생이 이 책을 학교에서 숙제로 읽게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세상 참 빠르게 변화한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얇고 가볍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좋다. 나이지리아에서 나고 자라서 미국의 TED 강연을 한 40대 치마만다 응고지라는 사람과 내가 이렇게나 공감할 수 있다니! 이 분은 나이지리아에서 산 경험을 예시로 들며 그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다, 저런 차별이 있다고 설명하시지만 이역만리 타국에 대한민국 여성이 구구절절 공감하고 있다고 상상도 못하실 것이다. 페미니즘은 국경과 인종을 넘어 전 세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어.디.에.나. 여성차별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받아들이기 불편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말을 인정하고 공언하기까지 나도 계속 자기검열을 하는 시간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세하고 티 나지 않게,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선진국의 여성차별은 외모지상주의, 성적 대상화, 직업에서의 선택, 일과 가사 양립의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설령, 한 국가에서 여성차별이 없다고 해도 지구촌으로 이루어진 현 세대에서는 미디어로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들만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거기에 더해서 빈번한 언어, 신체 성폭력 사건사고, 임금격차 등이 있다. 작년에 한 해 동안 무슬림 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이 곳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여성억압이다, 문화이다 라는 갑론을박이 있는 히잡, 젊은 여성을 결혼시키는 제도, 자연스럽게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 공공연하게 주변에서 보이는 가정폭력 등 여성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을 보면 무기력해졌다. 여자들은 스스로 집안일을 해야 하고, 가정에만 억압받으면서 지내고, 기회를 힘들게 얻어서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졸업 이후에 동급생인 남자들과 같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냥, 몇 분 숨 참으면 힘들잖아, 정도의 당연한 논리로만 받아들이는 듯했다. 국가는 국내외에서 도움을 주려고 손길을 뻗치는 여성기관들을 억압하고 NGO들을 추방했다.
2016년의 대한민국은 한 해에 셀 수 없이 많은 문제가 대두되어 사회가 끄러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시끄러움이 희망으로 느껴졌다.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라는 글이 맨 뒷 페이지에 써져 있다. 여성성, 남성성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닌, 본인의 여성성을 인정한다는 점이 와 닿았다. 처음에 페미니즘을 접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나의 행태가 사회적 산물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수치스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 꾸민다는 명제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름답고 소위 말하는 여성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편안하게 남자들을 초대하는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