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서평] 오뒷세이아
* 일리아스 / 오뒷세이아 중 오뒷세이아에 초점을 맞춰 쓴 서평입니다.
<일리아스> 속 전쟁들이 날카롭고 빠르게 흘러갔다면, <오뒷세이아> 속 또 다른 ‘전쟁’은 느리지만 처절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오뒷세우스지만, 그의 귀향길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계속해서 반복된다. 잘 생겼다는 묘사가 없는 그이지만 키르케는 그를 놓아주지 않고, 똑똑하다는 그의 부하들은 하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뒤 심연 속으로 사그라졌다. 그렇게 속이는 자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온전히 갚을 때까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사이 그의 부인은 108명이나 되는 구원자들의 성화를 견뎌내며 본인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는 귀향을 기다리며 수의를 짜고 풀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오뒷세이아>의 결말 부분에서 이뤄지는 ‘복수’는, 일말의 카타리시스처럼 여겨졌다.
<오뒷세이아>를 깊게 읽지 않았을 때의, 감상이었다.
2016년 여름, 고통 속에서 목포를 찍고 부산을 지나 정동진으로 향하는 길고 긴 기차 여행길에서 읽었던 <오뒷세이아>는, 다르게 읽혔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의 후일담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여신 미네르바(아테나이)에 의해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오뒷세우스의 모습은 (오뒷세우스가 아버지와 만나는) 작품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는 말이 책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운 정절과 사랑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의 후일담은, 이별과 각각의 재결혼, 혹은 먼 바다에서 낳은 아들에 맞는 죽음과 같은 ‘아름답지’ 않은 형태들로 기억되곤 한다. 끝끝내, 마침내 돌아온 고향에서 오뒷세우스와 그의 가족이 누리는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그의 길고 긴 여행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오뒷세우스가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고향이 주는 행복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마저 들기 쉽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이야기가 주는 화려함이 그만큼 강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뒷세이아>가 계속해서 읽히는 것은 그 길고 긴 여행의 과정이 주는 감동에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던 건, 그 뒤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음유시인들이 수십 번, 아니 수 천번은 읊어 내렸을 <오뒷세이아> 속에서 오뒷세우스의 여행은 언제나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을 것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땐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페넬로페의 사랑도, 허상을 좇는 듯한 텔레마코스의 끝없는 기다림도 끝나지 않는다. 약속된 미래도 없고, 도착했을 때의 현실도 불투명하건만 오뒷세우스는 검고 깊어서 마치 죽음과도 같은 그 바다를 계속해서 보고 또 보며 고향을 그린다. 가족을 위해 먼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렸을 그리스인들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안 될 것 같아도, 불가능할 것만 같아도 포기할 수 없는 꿈, 잃을 수 없는 그리움을 그들은 그렇게 삭히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바다에 산다는 건, 바다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약속 없는 믿음들을 간직하는 것 외엔 버텨나가기 힘든 길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닿지 않는 이상향으로서의 이타카는, 항상 사랑과 믿음과 행복과 같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꿈들 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항상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런 것이기에 <오뒷세이아>는 단순히 기다림과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을 뛰어넘는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