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 정말 유명한 책이다. 유년시절에 한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때 이 책을 소화하기에는 내 독해력과 사고력이 많이 부족했고, 완독을 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소설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 ‘개츠비의 죽음’이라는 결말 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위대한 개츠비’가 스터디 책으로 선정된 것을 듣고 새삼 기뻤다. 다시 제대로 읽어볼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닉 캐러웨이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된다.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의 초호화 대저택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개츠비의 집 맞은편에는 닉의 사촌 데이지가 사는 대저택이 있다. 데이지의 남편은 톰 뷰캐넌으로 역시 막대한 재산을 소유했다. 개츠비의 집에서는 밤마다 뉴욕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는 개츠비에게 초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대저택을 찾아와 파티를 즐긴다. 개츠비와 닉은 점점 친해지고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가 전에 연인사이였고 지금도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개츠비가 초록 불빛이 보이는 데이지의 집 건너편에 대저택을 구한 것도, 매일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도 다 데이지와 다시 사랑을 나누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사랑’이라는 꿈을 품고, 전역 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데이지와 개츠비의 관계를 알게 된 톰 뷰캐넌은 분노하고, 그러던 어느 날, 뉴욕시에 모인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개츠비와 톰은 데이지에게 자신들 중 누구를 사랑하고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데이지는 둘 다 사랑한다며 괴로워하다 일단 뉴욕을 벗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개츠비의 차를 몰고 뉴욕으로 돌아가던 데이지는 차로 뛰어든 톰의 정부 머틀을 치고, 머틀은 죽고 만다. 개츠비는 자신이 운전해서 머틀이 죽었다며 데이지의 잘못을 스스로 뒤집어쓴다. 이후 자신의 부인인 머틀의 죽음이 개츠비 때문이라고 오해한 윌슨은 개츠비를 총으로 쏴죽이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다. 장면묘사가 치밀했던 반면에, 인물의 심리묘사가 굉장히 난해했다. 번역 투의 문장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면 전후 미국은 경제적으로 호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신흥 부유층이 급증했고, 개츠비는 그 중 하나였다.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미국 내 많은 시민들의 속물근성이 발현되었다. 닉 캐러웨이는 소설 속에서 풍족함 속 공허함을 잘 체감하고, 이를 서술한 인물이다. 개츠비도 분명히 속물근성이 있다. 데이지가 돈을 바란다는 것을 알고, 개츠비는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다. 호화로운 대저택을 준비한 것도, 거의 매일 그 대저택에서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도 결국 자신의 물질적인 풍족함을 데이지에게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처음 다가갔던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 무언가는 아마 신분 상승, 재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 중 다른 인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속물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여럿 지닌 개츠비를 왜 저자는 위대하다고 했을까? 내가 생각한 바는 이렇다. 무려 5년동안 ‘데이지와의 사랑’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낭만, 매일 밤 데이지 저택 앞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며 꿈을 열망하는 개츠비의 모습 자체가 위대한 것이 아닐까. 비록 개츠비가 꿈을 이루기 위해 동원한 방법이 성실, 근면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사랑’이라는 자신의 꿈을 잡기 위한 삶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낭만이고, 그 낭만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미국 사회에서 찾기 드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개츠비가 위대한 것이다.
개츠비의 죽음 직전에 마지막으로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 당신 빼고 다른사람들은 다 속물이에요.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당신이 더 가치있어요.’라고 말한 대목에서 작가 피츠제럴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찬란함, 사치, 속물근성 속에 가려진 허탈함, 그리고 그 허탈함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낭만을 잃고 있지 않은지를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의 쓰였을 때의 미국의 경제, 사회상을 더 공부하고 봤으면 훨씬 풍부한 독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구성도 탄탄한 소설이니 아직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은 학우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