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원을 꿈꾸게 되다
- <유럽, 정원을 거닐다>를 읽고
2014310444 김은하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가 본 외국이라고는 일본 정도뿐인 내가 정원이라고 하면 동양식의 소담하고 정돈된, 꽃나무와 연못, 다리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됨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랬기에 유럽에 정원과 공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떠한 풍경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유럽의 정원과 문화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고, 나아가 이 책, 『유럽, 정원을 거닐다』를 읽으며, 나는 동양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그들의 ‘정원’에 다소 압도되었다. 어느 것이 더 좋고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동양의 정원과 건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달했듯, 서양도 그와 비슷한 구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정형화된 정원이 대표적으로 발달한 프랑스, 생활 속의 비정형적인 풍경식 정원을 추구한 영국, 그리고 현대식 정원을 보며주는 독일까지.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정원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프랑스의 정원 중에는 궁전이나 대저택과 결합하여 그 엄청난 크기와 위용을 보여주는 바로크 양식의 정원들이 대표적이라는 사실은, 유럽의 정원에 있어 거의 무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나를 다소 놀라게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박자 늦게 우리나라의 ‘정원’ 역시 창덕궁 등이 대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집과 집 사이에 소담하게 자연 풍경 위주로 꾸며진 정원과는 역시 달랐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명백히 인간을 중심에 둔 정원이라고 부를 만했다. 정교한 사람의 손길이 닿은 대칭적이면서도 원근감을 적절히 활용한 정원이었다. 이후 로코코 양식의 풍경식 정원이 프랑스 외곽의 위성도시 등에 생겨나기도 했다지만, 그 역시 광활한 크기를 바탕으로 하여 명백한 질서 속에서 꾸며진 정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만 바다와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베르사유 정원 내 운하 위를 유유히 떠가는 배의 사진은 나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어렸을 때 해리포터를 재미있게 봤었고, 그 이후에도 영국 드라마를 꽤 즐겨 보았던 나로서는 영국 정원을 설명하는 파트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대 하이틴 영국 드라마 <스킨스>의 주 무대는 주택가였고, 주택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정원들은 나로 하여금 영국에 대한 동경을 지니게 했다. 이 정원들의 역사가 영국의 기독교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성경에 따르면 에덴동산은 하늘이 아닌 이 땅에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신은 인간에게 ‘다스리라’는 의무를 줘서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그것을 가꾸는 일이 생활이 되어버리죠. 따라서 영국에서는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키친 정원이나 허브 정원이 발달합니다. 그런 철학적 배경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정원을 가꾸고 아끼는 일이 일상과 아주 친숙한 듯해요.”(162쪽) 또한 시싱허스트 정원을 꾸민 정원사 비타 섹빌웨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놀라게 했다. 동시에 마이너한 성 정체성이 정원을 꾸미는 데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녀야말로 가장 ‘영국적인’ 정원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비정형적인’ 성 정체성을 지니고 ‘정형적인’ 결혼 질서에 포섭되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 사람이 꾸민 정원이 아닌가. 언젠가 영국에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가 보고 싶은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트에서는 다른 나라의 정원을 설명하는 대목과는 약간 차이를 느꼈는데, 그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 정원의 변천사가 유독 다채롭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미친 영향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를 제하고서라도 주변국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며 바로크 양식의 정원도 추구했다가, 아예 연병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가, 풍경식 정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가, 다시 정형식 정원으로 꾸미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다채로운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독일이 현대 정원을 그토록 세심하게 꾸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절하게 여행 루트까지 소개된 이 책을 읽으며 유럽 정원 여행을 가고 싶다가도,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되었다. 나의 세대는 디즈니의 프린세스 영화들을 보며 자랐다. 꽃으로 둘러싸인 궁전을 배경으로 새가 날아드는 것에 대한 동경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닐 테다. 그러나 현대 한국, 특히 서울에서 정원을 가지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금전적인 부담이 상당하니 말이다. 궁전은 아니더라도, 발코니에 작은 정원만이라도 꾸밀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