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空間, Space) [명사] 아무것도 없는 빈 곳
장소 (場所, Place) [명사]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이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전까지는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간’이란 그 자체로는 그저 물리적인 영역을 가리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공간이 가치와 경험을 갖게 되는 순간 그곳은 ‘장소’가 되어 사람의 일상을 바꿔놓는다는 내용을 읽고 난 뒤로는 내가 있는 곳이 과연 장소인지, 공간인지에 대해 가끔 고민하곤 한다.
이번 학기에 [세계의 정원과 문화] 수업과 함께 <유럽, 정원을 거닐다> 를 접하게 되면서 나는 정원이 분명히 공간이 아닌 '장소' 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의 일상 속에서 정원은 그리 친밀한 요소는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대부분은 단독 주택이 아닌 아파트, 연립 주택, 빌라 등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예전에는 그나마 아파트에 붙어있던 ‘발코니’ 나 ‘베란다’가 점점 사라지고 처음부터 확장해 짓는 것이 트렌드가 되며 갈수록 일상생활에서 정원 비슷한 것도 접하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최근에는 다시 웰빙 라이프를 외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 신도시를 지향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지역에서 여전히 정원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이처럼 나에게 정원은 큰 의미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정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에서 신에 대한 찬미로, 절대 군주에 대한 복종으로, 또는 인간 표현 욕구의 표출로서 각각의 의도가 바뀌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원이 인간 문명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중 몇몇 정원은 내가 평소에 몰랐던 사실을 가르쳐 주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다. 이제 책 속에서 내게 인상 깊었던 정원 양식 몇 가지와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가장 흥미로웠던 정원은 아무래도 바로크 양식이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의 베르사유 공원이었다. ‘베르사유’라는 이름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당시 프랑스 왕정의 사치와 부패, 호화스러움 등을 연상시킨다. 처음에 나는 베르사유 정원의 규모나 그 화려함에 대해 알고 ‘차라리 궁전을 몇 채 더 짓거나 여가 생활을 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왜 구경하거나 산책하는 게 끝인 정원에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의도가 단순한 ‘풍경 감상’ 이 아니었음을 알고 베르사유를 단순한 사치의 행위가 아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에게 정원은 그의 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자 그 자체로 왕권의 상징이었다. 또한 단순한 실내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통경축의 활용과 시각적 축의 사용을 통해 정원은 태양신의 펼쳐나가는 위상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넓게, 크게’ 지은 것이 아니라 공원 전체를 가로지르는 대규모의 통경선과 방사형 소로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설계된 점도 인상 깊었다. 오히려 건물이 아닌 정원이었기에 이처럼 왕이 구현해내고자 하는 극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특히 프랑스의 경우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욱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권력의 괴시 수단으로 사용된 점도 인상 깊었다. 사회 관념과 당대 정치 형태가 조경이라는 요소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영국의 풍경식 정원인 스투어헤드 정원이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속 넓게 펼쳐진 목초지 배경을 무척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영화의 배경으로 스투어헤드 정원이 촬영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관심이 생겼다. 또한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고대 로마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바탕으로 바로크 정원과는 다른 매력을 추구했으며,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영국 특유의 고즈넉하고 그림 같이 아름다운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특히 교수님께서 수업 중 부연 설명으로 말씀해주신 ‘풍경화를 심어내듯이’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당시 영화를 보며 탁 트인 배경이 원래 있는 자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울타리를 없애고 일부러 개방된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실제 자연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극도의 인위적인 노력이 들어갔다는 점이 아이러니 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억지로 자연의 본래 모습을 왜곡하고 해치는 것 보다는 자연이 갖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더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관에서 출발한 양식이기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보여 공감이 갔다.
이처럼 나는 이번에 읽은 <유럽, 정원을 거닐다>라는 책을 통해 나는 단순한 공간으로 여겨왔던 정원에 담긴 역사와 사회적 배경, 지형적 특징, 그리고 정원 양식을 만들어 낸 당대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까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 있던 한 구절처럼 ‘정원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기에 정원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정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시대별 양식이 추구한 ‘미의 기준’이 어떻게 정원 구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며 시간에 따라 바뀌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든 나에게 정원은 그 필요성이 모호한 존재였다. 하지만 다양한 양식의 특징과 양식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으며 ‘인간과 자연과의 연결 매개체’로서 어쩌면 정원은 사람에게 집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 장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이 오롯이 인간의 삶만을 위해 구성되는 반면에 정원은 문명과 자연 그 사이의 성격을 가짐으로써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 가까이에 자연을 두며, 동시에 자연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바꿔나가는 것은 문명 발전해나가는 와중에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음을 잊지 않는 행위로 비춰지기도 했다. 요즘 도심지에 있는 아파트 촌을 가리켜 ‘삭막하다’고 일컫는 이유도 삶 속에 자연적 요소가 녹아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집집마다 여유롭게 정원을 가꾸는 유럽의 주택가 모습을 담은 방송을 보며 저들이 우리보다 더 ‘사람답게 산다’고 말 하곤 했던 것도 정원의 유무에서 그 차이가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난 여름 방학 때 나는 친구와 함께 내일로 여행을 갔는데, 당시에 방문한 곳 중 한 곳이 순천만 국가정원이었다. 그 곳에는 나라별 정원 형태를 구현해 놓은 테마 공원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정원에 대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기 전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나왔던 것이 뒤늦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에 또 순천을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꼭 정원 양식 별 특징을 확인하고 다시금 정원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보고 싶다. 그렇게 또 한번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나에게 순천 국가정원은 스쳐 지나간 여행 공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장소’로 남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