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원을 거닐다
2017312053
이한새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속 다양한 양식의 정원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정원을 중심으로 여행할 때 참고할만한 팁도 담고 있는 책이다. 나라별로
정리되어 있다 보니 시대별 흐름이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정원의 이름이 워낙 많기도 하고, 해당 국가의 언어로 지어져 구분이 잘 되진 않았지만 다행히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대략적인 정원의 느낌을 보기엔 좋은 책이었다. 사실 위 네 나라를 오랫동안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자동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기억에 크게 남는데 그 이유는 산마르코광장이라든지, 판테온, 폼페이 등의 유적지는 직접 가봤던 곳이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흔적이 있는지를 눈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17세기 유럽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에 대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책에 따르면 17세기 프랑스는 절대 왕정 속에서 피어난 절제미, 즉 기하학과도 같은 명료하고 질서와 균형 잡힌 형식을 중시했다. 1,400여개의
분수와 조각상들이 즐비한 베르사유 궁전은 정원의 중심축을 가르는 일직선의 운하와 함께 기하학적인 도형과 법칙으로 설계되었다. 처음 프랑스 여행을 가서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마주했을 때 방대한 정원을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구획하여, 이 세계를 정돈된 하나의 형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아름다움을 음미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만든 것도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닌 직선으로 다듬은 정원 안에서 선명하고도 화려한 실내의 모든 장식은 창 밖의 대운하의 지평으로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 어느 곳 보다 평온하고 영원한 경광을 보여주었다. 책을
읽고 그 당시 찍었던 베르사유 궁전의 사진들을 보니 연결되고 불확실하고 모호한 현실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이 미적으로도
분명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했던 시대의 산물임을 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처럼 화려하고 화단 하나 하나가 깔끔하게 모양 잡혀 약간은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정원보다는 ‘모네의 정원’같이 수채화 스럽고 낭만적으로 꽃이 흐드러져 있는 소박한
정원을 선호한다. 따라서 다시 프랑스를 가게 된다면 리스트가 머물며 작곡을 했던, 물을 매개로 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 ‘빌라 데스테’를 꼭 방문할 것이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마주친 ‘프레데릭 마레스 박물관’ 속 조용한 정원과 ‘아르디아카의 집’ 내부에 있던 와이어로 고정되어 된 키 큰 야자수
나무 등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파리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안에 정원이 있는 경우가 많아
도시 전체가 정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했는데, 이런 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정원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상 속 정원보다는 녹지 공간이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공원을 가지 않는 이상 강남과 같은 고층 빌딩만 우거진 도심에서는 정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퐁피두센터는 현대적 요소와 과거의 전통이 결합된 건축물이다. 그러나
서울의 현재 모습을 보면 한옥 마을이나 역사 유적지를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유럽 국가들에서 느낄 수 있는 낮고 따뜻한 베이지 색감의 건물이 주는
정겹고 오래된 느낌보다는 세련되고 직선적이며 높아 사방이 막힌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건물을 높게 짓는 것이 땅의 면적 대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좀 더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한 건축물이나 공원, 정원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앞머리에서
여행자에게 ‘정원’은 힘든 여정 속 작은 휴식을 제공한다고
써있다. 바쁜 도시 투어 일정에서 한 템포를 쉬어 가기엔 정원 만한 곳이 없다는 데에는 정말로 공감이
갔다. 이번 학기 개강 직전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주
정도 머물렀는데, 복잡한 관광지에 있다가도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무나 벤치가 놓여 있는 광장이나 휴식
공간에만 들어서도 숨이 트이고 체력이 보충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다 보니 ‘윌리엄 월튼’이라는
작곡가가 생각났다.
윌리엄 월튼은
영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젊은 시절 작곡에
재능을 보이며 작곡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사람이다. 그의 커리어를 보며 조금 특이한 부분이, 젊은 시절에는 영국 최고의 천재 작곡가로 불릴 만큼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마흔을 넘긴 음악 인생의 후반기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갑자기
이 책을 읽다 작곡가 생각이 났다고 하면 뜬금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윌튼이 생각난 이유는
그가 정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윌튼은 이탈리아 이스키아 섬에서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고, 당장 정원설계사인 러셀 페이지를 영국에서 불러와 정원을 꾸몄다고 한다. 그리고
이스키아로 이주해 ‘라 모르텔라’, 즉 은매화라는 뜻의 이름을
짓고 아내와 함께 드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2004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뽑힌 ‘라 모르텔라’는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정원 중 하나이다. ‘라 모르텔라’를
보고 난 후에 나이가 들면 꼭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다. 정원이
있는 집 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며, 어떤 음악이나 예술을 접해도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세계의 정원과 문화’수업을 듣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정원은 개인이 소유한 것이고, 공원은 공공시설로써 여러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등 기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해서 시대별로 달라지는 정원 양식 등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생활하면서 쉽게 지나쳤던 식물이나 자연 등을 새롭게 느끼고 다시 돌아서서 유심히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업이고 책이었다. 책에 따르면 유럽 사람들에게 정원은 아주 이상적인 ‘에덴 동산’같은 공간이며, 이야기가 깃든 공간이기에 정원에 대해 천국을 향한
동경을 품기도 한다. 특히 독일과 같은 경우 도시 복구 및 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가 강해 국가 차원에서
정원을 활성화하고 되살리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연방정원박람회를 개최하여 수백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시민들이 정원과 자연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느끼고 정부 차원에서는 대한민국
지역 전반에 걸쳐 다양한 테마로 정원을 조성하고 가꿔 나가려는 노력들을 더욱 가속화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