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영국의 정원을 소개하던 작가가 한 말 중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이 있었다. ‘이상하게 한국 사람들은 코티지 정원을 굉장히 좋아 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원들을 거닐며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던 나이기에 더욱 와 닿는 말이었다. 반면, 선호하는 스타일의 정원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정형적인 정원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정원들도 있었다. 이 독후감은 나의 선호에 대해 깊숙이 고찰하고 받아들지 못했던 부분을 수용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기술하는 형식의 글이다.
나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나의 여행담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럴 때 마다 한 번씩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는데, 바로 서유럽과 서유럽의 유산들(주로 건물)에 관한 것들이다. 나는 서유럽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가고 싶은 느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평소의 내 여행지는 항상 그 평온한 정취를 머금은 곳들이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브의 차가움, 크로아티아 플리트 비체의 신비함, 헝가리의 쓸쓸함, 인도네시아의 무인도제도, 제주도의 겨울. 사람이 없고 여유로움이 전해져오는 도시들을 좋아했다. 유일하게 맘에 들었던 서유럽의 모습은 빈의 여유로운 도시문화와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있는 듯 보이는 공원들이었다. 책의 시작은 이탈리아. 정원문화를 비롯하여 유럽문화의 시초. 나에게 서유럽은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나라. 과연 이 책이 이탈리아의 정원으로 나를 회유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탈리아
처음 이탈리아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맛있는 요리와 피렌체의 웅장한 성당들이 그것들.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도착 했을 때는 그런 감흥이 온데 간데 사라졌다. 너무 많은 인파에 진저리만 쳤고, 건물은 크기만 했다. 서유럽 모든 곳이 다 이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나 아쉽고, 또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내가 정원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정원들을 못 둘러보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정원마저 실망스러웠다면 나는 다시는 서유럽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말은 즉, 이 책이 나에게 정원을 보러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장 찾아가고 싶은 정원은 ‘빌라 아드리아나’이다. 휘황찬란한 문명의 유적보다는 공허함을 품은 유적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잘 맞는 정원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역사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나였음에도, 폐허가 되어버린 공터는 고대 로마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인상을 주었다. 글쓴이의 말대로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 있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여행을 가야한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되는 첫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의 정원에서 고정관념을 깬 나는 빨리 프랑스의 정원이 보고 싶어졌다. 더 길게 표현하자면 프랑스의 모습을 작가가 어떻게 느꼈고 묘사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가장 심하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도시가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는 루브르와 에펠탑 등 인공적인 조형물로 아름답게 꾸며진, 북적이는 도시라는 생각이 매우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로수를 제외하고는 녹색빛깔을 찾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과, 덩달아 프랑스가 자랑하는 베르사유와 에펠탑 등도 인간들이 억지로 꾸며낸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가장 처음 소개되는 공원을 보며, 뭔가 알 수 없는 향수에 빠졌다. 나는 프랑스에 가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베르시 공원의 사진을 보았을 때 어렸을 적 가족들과 놀러갔던 보라매공원이 떠올랐다. 보라매공원도 시내의 한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들도 내가 느꼈던 도심 속의 초록색을 느꼈을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발전한 프랑스의 조경기술을 배워와 우리나라에 보라매공원을 비롯한 도심 속 공원들이 조성이 되었을 텐데. 파리가 저렇게 대단한 도시였어? 그래서 문화의 도시라고 하는 거야?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속으로 계속했다. 파리는 내가 생각하는 현대문물의 폐해 같은 곳이 아니라, 책의 소제목처럼 전통과 현대의 긴장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섞여있는 애매모호한 경계선, 그 경계선 위를 걷고 싶은 욕망이 몰려왔다. 하루 종일 파리의 중심지에서 인간의 문명을 경험한 뒤 단잠에 빠지고, 아침에 15구 그르넬 거리의 시장을 산책하는 기분, 그 얼마나 편안한 상쾌함인가. 개인적으로 딱딱하고 직선적인 선의 정원문화가 먼저 자리 잡은 것은 아쉽다. 하지만 베르사유가 있기에 몽소정원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 파리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부러운 점을 꼽자면, 시테 유니베르시테 같은 아름다운 기숙사가 우리학교에도 있었으면 한다.
파리의 매력을 벗어나, 꼭 언급하고 싶은 도시가 있는데 프랑스의 리옹이다. 책에 묘사된 것처럼 강가를 중심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자리 잡은 마을은 내가 상상하던 프랑스 남부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 단순히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느낌을 떠나 내가 인상 깊었던 점은 대부분의 리옹정원이 파리와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형과 종교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낭만적이고 품위 있는 이유를 생각하고 싶다. 절대 권력을 피해, 아니 절대 권력에 반항하며 정형식 정원이길 거부한 것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높은 지조가 가다듬은 그들만의 정원.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국
드디어 영국식 정원을 말할 차례가 왔다. 반지의 제왕에 나온 호빗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코티지 정원.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스레 나의 관심은 코티지 정원으로 쏠려있었다. 하지만, 파리정원을 탐구하며 배웠듯 정원의 형태는 서로 비교되며 더 아름다워지고 그들만의 개성을 갖춰나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햄프턴코트 궁을 빼놓을 수 가 없다. 햄프턴코트 궁 사진을 보며 순간 책장을 잘 못 넘긴 줄 알았다. 프랑스정원의 모습을 너무 빼닮았고 오히려 다양한 도형모습의 구조가 더 정형적인 느낌을 주는 듯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런 정형성에 대한 반발로 어여쁜 스투어헤드정원이 생겼으니 말이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정원은 특히 다리가 매력포인트다. 오만과 편견을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남녀가 저 아름다운 다리를 두고 사랑을 맹세하지 않을 수 있을 까? 다리를 쳐다보며 앉아 있는, 다리 위에서 사랑의 맹세를 나눴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왜 사람들이 영국하면 풍경식 정원을 떠올리는지 알 수 있는 정원이었다. 영국에는 스투어헤드정원처럼 사랑이야기가 얽힌 정원이 유독 많은 것 같은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정원은 비타와 헤럴드의 화이트 정원이다. 정형적이면서도 풍경식정원의 묘미를 조화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이 굉장히 진취적이다. 질서 속에서 자연스러운 깨짐을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일 텐데, 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국인들에게 정원은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정원을 즐긴다는 뜻도 있겠지만, 아마 그렇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티지 정원 때문일 것이다. 참 신기하다. 계절의 영향을 고려하여 식물을 심는다는 것부터 우리나라의 텃밭과 굉장히 유사하고, 특히 키친정원은 그 용도나 생김새가 차이가 없다.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의 텃밭도 이와 같은 느낌일까? 우리는 텃밭의 실용적인 측면만을 주목해왔기에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것인가? 혹은 자연은 인간이 가꾸는 것이라는 서양인의 가치관이 그 몫을 톡톡히 한 것인가?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한국인이 특히 코티지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보고 자라 익숙하면서도 거기에 아름다움이 극대화 되어있는 것이다. 대중들이 정원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발전한 것이 코티지 스타일이라는데, 한국인에도 언젠가 텃밭을 이런 방식으로 가꾸는 바람이 불지도 모르는 일이다.
독일
히틀러와 제국주의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 탓에 독일정원은 당연히 정형적인 느낌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식 정형정원이 유행했을 때의 국력이 강하지 않았던 탓인지, 헤렌하우젠정원을 보면 어느 정도 참고만 하고 완전히 베껴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상 적인 것은 파우엔인젤이다. 시대에 맞지 않게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도시와 어우러지는 느낌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보면 마치 후손의 도시를 위해 조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류들의 생태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탓인지 오히려 책에 나온 정원 중 가장 자연스러운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일정원을 보며 감명 깊었던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상수시궁처럼 새로운 왕이 재임할 때마다 바뀌는 정원의 양식이다. 문화재가 정치에 지극히 심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어떻게 현재의 모습에 다다랐는지 생각하면서 감상한다면, 역사와 문화재 사이의 깊은 상관관계를 알아채기 쉬운 길라잡이 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또 그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나치시절의 문화재를 과감히 포기하려는 독일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루수트가르텐 재설계공모작 당선취소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의 치밀함과 과거에 대한 이해도는 일본의 잔재에 아직도 허덕이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장점인 것 같다. 정원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맺음말
비엔나의 쉔부른궁원같이 내가 직접 보았던 정원들은 소개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유럽전체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나라는 프랑스다.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도시의 공원들이 그들을 본 따 만들은 것 같다는 느낌이 일단 내 머리를 때렸고, 전통과 현대를 융합시킨 문화선진국의 위용에 동경심을 느꼈다. 정원이라는 장소가 얼마나 위대하며 많은 감정과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는지 알았으니, 다음 여행은 정원투어로 정했다. (물론 풍경식 정원 위주로 볼 것이다) 덧붙여서, 가장 처음 가볼 곳은 프랑스편의 저자가 묘사한 어느 동네 뒤편의 공원이다. 정형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벚꽃나무공원, 늘어진 나뭇가지와 흩날리는 벚꽃에 정형적인 공간을 더하자니 상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리송한 그 기분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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