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초에 친구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프랑스 여행 일정을 담당했던 내가 일정에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정원’을 넣은 것을 보고 친구가 흥분하며
세계의 정원과 문화 수업 교수님께서 베르사유는 정원을 먼저 보고 궁전을 둘러보라고 하셨다며 계획을 수정하라고 했고 그렇게 그 일정은 ‘베르사유 정원, 베르사유 궁전’이
되었다. 유럽의 정원에 관심이 많은 친구와 달리 나는 덤덤했다. 내가
상상하는 그런 정원이겠지, 네모난 뜰과 직선으로 나열된 기둥, 동상,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 이런 날 보며 친구는 내가 너무 감성이
없다고 타박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켜보겠다는 심정으로 베르사유 정원에 도착했지만 감상은 극과 극이었다. 당시 눈이 쌓여있던 정원을 보며 나는 스키장과 다름없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반면, 친구는 너무 아름답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대칭적으로 나열한 동상, 아폴로 분수 등. 정원의 시작부분으로 끌고 가더니 멀리 보이는 수로를
가리키며 이 수로가 사실 엄청 길고 멀리 있는데 가까이 보이게 하는 과학적인 기법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베르사유 정원이 루이 14세가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지은 거대한
정원이라는 걸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크게 만들었으면 더 커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줘야지, 가까이 있어 보이게 하는 건 역효과 아냐?”하며 반문했었다. 이렇듯 베르사유 정원의 첫인상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유럽, 정원을
거닐다>라는 책을 읽을 때에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베르사유 정원이었다. 가장 먼저 프랑스의 정원을 주제로 한 2부를 펼쳤다. 그 당시 발달한 천문학을 베르사유 정원을 만드는데 반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서 비판했던 ‘가까이 보이는 효과’는 원근법을 적용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르사유 정원은 정원 내의 모든 설계에 규칙성이 부여돼 있고, 그 질서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바로크 정원이다. 자연을
정원에 반영하고 싶었던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한 자연이란 이미지는 질서정연함, 규칙성, 대칭성인 듯 했다.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독일의 정원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프랑스의 정원을 본 뒤에는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이탈리아의 정원을 살펴봤다. 현대 서양 사람들이 누리는 대부분의 생활 방식은 고대 로마인들의
삶이 현대적으로 변화한 것이라 하여 이탈리아 로마가 갖는 상징성은 다른 모든 유럽의 도시를 제압한다. 로마
외곽으로 나가면 당시의 정치 상황이 정원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추기경
세력들로부터의 암살 위협으로 재임 기간이 짧았던 로마 교황들은 서로 교황 직을 맡지 않으려 했고 추기경들을 그들을 교구로 보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추기경들이 자신의 교구 주거지로 만든 것이 지금의 빌라 란테, 빌라
데스테 등이라고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온실이다. 정원 안에 온실을
두는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인데, 고정된 화단을 두지 않고 레몬이나 오렌지 등
온실의 용도에 따라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이 신기했다. 이탈리아 정원이 은유적인 것도 다른 유럽의 정원과
구분되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정제된 프랑스의 정원과 달리 건물이나 문을 거꾸로 놓기도 하고 입을 크게
한 마스크 형식의 마스케로네를 만들어 이탈리아 정원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영국식 정원으로는 풍경식 정원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포프는 프랑스
정원의 정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저급하다고 평한 것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었고, 자연을 빼닮은
정원이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영국식 정원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풍경식 정원은 정원보다 공원에 가깝다. 일부 상위층이 돈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었기도 하다. 다른 정원으로는 코티지 정원과 아트 앤 크래프트 정원이 있다. 이는 시골의 조그만 초가집에 딸린 정원 스타일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많은 정원이 꾸며진 것이라고 한다. 코티지 정원은 우리나라에도 정원 열풍을 일으킨 미국 정원사
타샤 튜더의 스타일이다. 과거부터 세계 어디든 정원문화를 이끌어온 세력은 대중이 아닌 부유계층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코티지 스타일은 대중이 가꾸고 즐겨온 정원 스타일이다. 자유로운
공간 활용, 빽빽할만큼 채워놓은 식물, 다양한 경관을 가진
것이 큰 특징이다.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과 달리 친근하고 소박함이 돋보이는 정원이었다.
독일은 프랑스식 정원을 독일의 지리적 환경과 경제적 상황에 맞게, 소유주의
취향을 보태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마다 다른 특색의 바로크 궁원이 생기게 된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뚝뚝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정원 또한
규칙적이고 대칭성이 강조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베를린의 정원은 시각적 효과보다 잘 가꿔진 숲에 둘러싸여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예로 티어가르텐을 들 수 있다. 베를린
한가운데 위치한 티어가르텐에서는 흙을 밟아볼 수 있을 정도로 숲을 도시에 완전히 들여앉힌 형태이다.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각 나라에서 여행다니기 좋은 곳과 함께 정원을 곁들여 소개한다. 각
나라의 문화와 사람에 대해 배경지식을 준 후에 정원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알기 쉽게 각 나라의 정원에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탈리아의 정원은 왠지 넝쿨이 가득할 것 같고, 프랑스와 독일의 정원은 반듯반듯할 것 같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깼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면서 정원의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친구가 정원을 예찬할 때마다 반박하며 했던 말이, “난 딱딱한 유럽의 정원보다 자연스럽게 배치된
한국 궁원이 더 예뻐.” 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배치된’이라는 것도 결국 자연과 유사해 보이게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자연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두 문화권의 차이였던 것이지 ‘자연스럽다’와 ‘인위적이다’를 가르는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유럽, 정원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각 국가가 어떠한 문화적 가치관, 정치적 이유로, 또는 어떤 과학 기술이나 예술성을 도입해 정원을
꾸며나갔는지 비교하며 읽으면서 수수함과 정제됨은 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을 가르는, 이분법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