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설명들은 잘 몰랐지만 이 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제목에서 뚜렷하게 보이다시피 ‘이기적인 유전자’에 관한 내용인데, 기본적으로 유전자는 후세에게 가장 좋은 특징들을 물려주는 것을 지향한다는 내용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 유전자를 몸 속에 지니는 인간은 좋은 유전자가 번영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프로그램 된 로봇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학생이 이 책을 읽고는 자신은 살 목적을 잃었다면서 선생님에게 울면서 찾아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생님은 학생을 달래주고 주변 친구들에게 그 책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40억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들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그것들은 원격 조종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도킨스는 다윈이 말하는 자연 선택이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복제본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혈연자를 보호하고 돌본다는 것이다. 또한 도킨스는 인간이 독자적인 문화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 문화 속에 모방의 단위로서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밈(meme)이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영어로는 meme 이라고 불린다. 짤이나 밈은 주로 공감되는 표정/상황 등을 담은 사진이나 굉장히 짧은 영상을 말한다. 짤이라는 개념에 익숙한 사람이면 알고 있다시피 짤은 공감을 굉장히 많이 불러일으켜서 괜히 저장하고, 필요할 때 쓰고, 공유하고, 카카오톡 배경화면이나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만든다.
이기적 유전자는 고등학교 추천 도서 목록에도 있다. 굉장히 혁명적인 책이라는 말을 들어서 시간이 나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다 읽고 나니 아무래도 생물에 어느 정도 깊은 관심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이 이걸 읽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 유전자 관련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놨는데, 어려웠다. 내가 문과라서 그런가. 과학 과목은 굉장히 얕고 적게 배웠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내가 완전히 이해할 만큼 친절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고, 과학사에서 이 책 전후에 어떤 생각이 주류였는지 그 상황을 모르니 이 책이 왜 그렇게 ‘혁신적’이었는지도 체감을 할 수 없었다. 역시 무지는 무섭다. 인간이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특정한 복제/전달자의 매개체라는 관점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유전자가 하라는 대로 따르지 않고 반항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전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어때서?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법과 도덕을 무시한 짐승 같은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유전자와 인간 모두 자기 보존을 지향하고 있는 한 인간은 유전자의 은밀한 테두리 안에서 자기계발/자아실현을 할 것이며,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유전자가 인간을 매개체로 한다고 해서 삶의 목적을 잃을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