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편향된 지식을 갖고 있는 문과생의 한명으로서, 그래도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서 읽게 된 책이다. 그야말로 생물학에 관해선 고등학교 이후론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이 현재의 생물학이나 유전학계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혹은 이 책에 서술된 정보나 이론들이 전적으로 타당한지 아니면 부정당한 이론이 존재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 추가 정보는 이 감상문을 쓰고 나서 확인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의 주요 골자는 생물체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목적론적인 비유를 자주 하지만, 저자의 의미는 생물체에게 정말로 그러한 심오하고 특정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생물체가 현존하는 이유는 그 생물체가 자연선택에 의해 적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개체를 넘어선 목적의 개념이 아님 생존의 개념이 들어가고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한 우연이라고도 필연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결과론적인 개념만이 남아있다.
저자가 이렇게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해체하는 것은 기존의 생물학계에 만연한 집단(종)이나 개체를 중심으로 한 이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기적인 유전자 일 뿐이며 개체나 집단은 그저 자연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적응의 한 형태이다. 그에 따라 그는 개체나 집단이 가진 신화를 반박하며 또 자신의 이론인 이기적 유전자론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가젤이 통통 튀는 것은 자신이 건강함을 보여줘서 사냥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고, 새들이 포식자의 등장에 경계음을 내는 것은 자신이 안전한 지역으로 옮길 때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의 경우에, 그들은 여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유전자를 위해 이득이다. 왜냐하면 개미는 여타 동물들과는 여왕이 생산하는 자매들끼리 3/4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용하게 되는 개념은 ESS인데 진화적으로 안정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ESS적 시각은 모두의 이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개체 각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을 경우 도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말한다. 동시에 저자는 경제학적인 관점을 곁들여 게임이론을 통해서 생물들의 전략을 파악하고 그것이 얼마나 스스로의 유전자에게 이득을 주는지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마음씨 좋고, 관대하며, 시샘하지 않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펼쳐지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에서 ESS를 형성한다. 겉보기에는 이타적인 개체들이 실은 가장 이득이 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써 이타주의가 설명된다.
내가 느끼는 저자의 가장 대담한 부분은 유전자는 실은 생존 기계 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일 뿐이며 개체란 결국 같은 목적을 지닌 바이러스들의 군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만약 외부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기생할 때 숙주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후손을 미래로 전달한다면, 그러니까 난자와 정자 속에 같이 전달된다면 바이러스도 같이 협력할 것이고, 언젠가 개체에 편입할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남아 있는 것은 유전자의 목적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전자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가 단순히 개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존재들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예로 비버를 들 수 있는데, 유전자의 관점에선 개체의 신체뿐만 아니라 개체가 짓고 있는 댐과 살고 있는 호수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나에게 기존의 관념이었던 개체에 대한 환상을 부시고 그 곳에 새로이 유전자가 갖고 있는 역할을 심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이타주의에 관한 환상이 읽는 동안은 사라지기도 했다. 어떤 점에선 나 자신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다. 진화가 나의 생존이 아닌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서였다면 나의 자유의지는 필요 이상으로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던 존재에 대한 믿음이 거짓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저자에겐 인간의 역사란 세계의 실제 역사에 비춰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를 둘러싼 비밀스럽고 가장 강력한 의지들이 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조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에게 정체성에 본질적인 의심을 심어놓았지만, 답을 제시하지 않고 책을 마쳐버렸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의문점은 이 책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