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들을 찬찬히 보며 걷던 중 빳빳한 빨간색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도 아주 작게 쓰여 있어서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펼쳐봤는데 굉장히 익숙한 삽화 한 장이 보였다. 버섯 위에서 곰방대를 피우는 애벌레를 보고 한 소녀가 깜짝 놀라는 장면이었다. 바로 앨리스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화 속 주인공에 반가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저 홍학으로 크리켓 경기를 하는 모습이나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이 파편화된 장면들과 주인공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그 내용을 떠올려보고 이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남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 쓰인 동화라서 그런지 책을 정말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다 읽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 내용들이 계속 나왔고, 책 속의 여러 주인공들은 소위 요즘 말하는 “아무말대잔치”를 벌였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정말, 아무 말들의 향연이었다. 계속되는 말장난들과 넌센스들 때문에 나는 책의 주제가 “세상은 요지경이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논리와 합리를 추구하지만 실상 하는 말을 들어보면 논리와 무관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비꼬아 표현한 것이 작가가 하고 싶던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해설부분을 보니 실제 당시 영국사회에 대한 다양한 풍자로 해석이 된다고 한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토끼는 겁 많고 소심한 소시민으로, “저놈의 목을 쳐라”를 남발하는 여왕은 독재자를, 그리고 하얀 장미를 빨갛게 칠하고 있는 카드병정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무능한 공무원들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풍자와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는 앨리스의 모험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주제는 무엇인지, 논리적 앞뒤를 따져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나는 이미 너무 커버린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치는 것만으롣 행복하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앨리스가 버섯을 먹고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 내 몸이 커지면 어떨까? 하늘의 별을 만져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꽤나 귀여운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분명 같은 책을 읽었지만 똑같은 책을 읽은 나의 반응과 생각은 사뭇 달랐다. 과연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을까. 이 부분은 어떤 사회상을 풍자한 것일까. 이 얘기와 앞의 이야기는 어떤 연결고리로 연결되는 것일까. 주인공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해 보기 보다는 주인공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기 바빴다. 넌센스로 가득한 책을 읽으며 그것에 웃음 짓지 못하고 끙끙대며 고민하기 바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많은 비유들로 가득하다고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동화이다. 상상의 나라 속으로 앨리스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험을 즐기지 못하고 그 속에서 의미와 의도, 주제를 찾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물론 마냥 순수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로, 앨리스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던 순수한 그 모습이 그립다. 아이같이 순수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