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물시간에 처음 DNA구조에 대해 배울 때 왓슨과 크릭이 DNA의 여러 가지 가능한 모형을 이리저리 만들어보다가 이중나선의 모양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뒤에는 프랭클린의 X선을 이용한 이론적 토대가 있었지만, 그녀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지식과 DNA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꽤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의 형식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왓슨의 장학금과 생활비 문제, 크릭의 연구실 퇴출 위기 문제, 염기 배열의 잘못된 조합으로 인한 좌절 등 그들은 수많은 좌절들. 그리고 위대한 발견의 배후에 윌킨스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의 도움. 그 일련의 과정들은 과학적 발견이 한 과학자(혹은 몇몇의 과학자들)의 천재적 두뇌로 만들어낸 산물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연하게 느꼈던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며 나온 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은 염기쌍들의 상보적 결합이었다. 샤가프의 법칙을 토대로 왓슨과 크릭은 처음에 염기는 같은 염기끼리, 즉 아데닌은 아데닌끼리, 티민은 티민끼리 결합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였다. 나 또한 DNA의 상보적 결합을 알고 있지 못했다면 왓슨과 크릭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로서 포기했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의 반전이 유레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유레카 덕분에 지금의 게놈 프로젝트라는 인류의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까지 진행할만큼 발전해온 것이다.
또한 과학자들의 취미 생활과 사교 모임의 장면은 이 책이 단순히 과학적 발견을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만을 비추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인간적 면모 또한 조명하고 있음으로써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서술이 왓슨의 관점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크릭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서술되었다면 이러한 목마름은 좀더 해갈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프랭클린에 대한 에필로그였다. 그녀의 차갑고 도도한 성격은 남성들의 공간이었던 과학계에서 그녀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윌킨스와의 마찰, 왓슨과 크릭을 대하는 냉랭한 태도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 여성들도 자유롭게 연구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 더 나아가 더 많은 여성들이 학계로 진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적 발견의 일련의 서사 과정을 경험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지껏 그 발견의 결과만을 배웠다. 어떤 과학자들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이론이 세상에 발표가 된 것인지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책에서 그 과정은 매우 역동적이었고 살아움직였다. 그들만의 정치(?)도 들어가있었으며 서로의 견제와 비판, 좌절. 거기로부터의 도전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 그들이 있었다. 그러한 배경지식 속에서 이론을 배운다면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 뿐 아니라 심화된 내용을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why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학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한 학습의 첫 단추가 되기에 충분한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