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에 공식들이 있다면 인문사회과학에서는 '~ISM'이 있을 것이다. 관념들(ISM)은 자연과학에서 공식들이 가지는 위치만큼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길잡이로써 당시 지식인들을 아우르며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관념들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관념의 철학적 의미를 깨닫는 것을 넘어서 당시의 시대상과 이전 시대와의 흐름까지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볼때 이 책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개념당 4~5페이지 정도의 짧은 지분으로 설명하되 가능한 개괄적으로 담기 위해 그 관념을 주창한 사상가의 상황이나 시대적 흐름을 중심으로 다룬다. 이러한 특징은 여기서 다루는 관념들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접하는 사람보다는 어느정도 귓등으롤로라도 들어봤던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읽혀질 수 있음의 의의를 가진다. 달리 말해서 여기서 나오는 개념들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사상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인문학적 시대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개념들의 순서가 가나다 순이라는 것이다. 저자 박민영은 개념들의 사전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쓴 것 같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시간 순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사상들 자체가 그 자체로 탄생되지 않고 당대의 혹은 이전 시대의 사상들과 끊임없는 교류와 발전, 진화 등을 통해 정립되기 때문에 저자가 그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계속 언급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글을 읽으며 뒤로 혹은 앞으로 오가며 읽어야 제대로 된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글읽기는 가독성과 이해도를 떨어트릴 수 밖에 없다. 이와 별개로 각 개념들의 마무리 부분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주장이 함의되어 있었는데,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투영해보였다기 보다는 어떤 양비론의 입장에서 각 사상들의 한계를 명확히 하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양비론 자체가 올바른 민주주의의 성립에는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나만의 입장을 세우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좋았다. 어떤 인문학적 기본서로써, 사회적 폐단으로 점철된 이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입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로써 이 책은 그 역량을 더할나위 없이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완독하고서 천천히 곰씹다보니 3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철학은 공허하고, 정치는 위선적이며, 그럼에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로 이 책에서는 철학에서의 주로 담론들을 일괄적으로 다루는데, 플라톤주의로 시작되는 고대 아테네의 철학적 담론에서 시작해 해체주의로 마무리되는 데리다의 철학적 담론으로 이어지는 동안 끊임없이 앞선 세대의 주장을 반대하고 또 보충하며 정교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정교해진 철학은 일상생활과 괴리되어 그 자체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즉, 고립되었다. 본디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음에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즉, 공허해졌다. 두 번째로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다. 정치는 철학처럼 언어의 한계로 말미암은 말장난을 벗어나 보다 실용적인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을 다룬다. 하지만 정치적 사상이 얼마나 많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현실 속 정치는 항상 그 자체로 왜곡된다. 즉, 정치적 사상은 정치인의 이익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결국 사상의 활용은 당시의 기득권층의 이익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위선적이다. 마지막으로 난 한때 세상이 이토록 살기 힘들어진 것이 이상적인 정책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치, 경제학의 발달이나 이상적인 지도자의 등장으로 이러한 어려움이 극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상적인 정책은 항상 대등한 합리성을 가지는 정 반대의 정책을 수반했다. 결국 유토피아의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뻔한 대답이지만 우리들의 정치철학적 관심이다. 앞서 보았듯 기득권층은 정치학적 개념들을 이용해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합당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헤게모니를 재생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똑똑해져야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루어지는 '파시즘'이나 '애국적 보수'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지는 '군국주의'를 구별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내딛어야 할 첫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