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출판사 간행)
오주석, 이 분 참 애석하다.
그는 쉰 살을 못 넘기고 세상을 뜬 미술사학자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신문 기자,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등을 지냈고 전통미술에 관한 저술과 강의를 병행하면서 열정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하직했으니 미술계로선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의 안목과 식견, 글 솜씨는 남부럽지 않았다. 대표적 유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행복’을 사무치도록 묘사했고, 이 땅에 태어난 화가들의 예술적 유전자를 떳떳하게 자랑한 역저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최순우 선생 이후 오주석처럼 한국미를 곡진하게 설파하는 전도사를 잘 만나보지 못했다.
그가 쓴 또 다른 저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이름값을 한다.
그의 강연을 정리한 이 책은 전통회화의 아름다움이 갈피마다 차고 넘친다.
박람강기한 저자의 미덕이 좋은 글감을 만난 까닭인지 행간 깊숙이 자신감이 배어있다.
우선 글이 수월하고 편안하다.
입말을 그대로 옮긴 책이라 독선생을 마주한 듯 가르침이 귀에 속속 들어온다.
작품 하나를 놓고 분석은 치밀하되 설명은 친절하다.
옛 그림 감상자에게 저자는 딱 한마디 말을 명심하라고 청한다. 즉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心不在焉) 보되 보이는 것이 없고(視而不見) 듣되 들리는 것이 없다(聽而不聞)’는 것.
그는 ‘보고 들을 때는 옛 사람의 눈과 귀를 빌리고, 느낄 때는 옛 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얻어라’고 독자에게 다짐받는다.
어떤 예술도 간과하는 자의 눈에는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참말이지 사랑해야 보게 된다. 서두르지 않아야 들어온다.
저자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첩’을 보여주며 어중치기 감상자를 꾸짖는다. 저 유명한 ‘씨름’에서 씨름꾼이 어느 쪽으로 자빠지는지, 다음 판에 나설 후보 선수가 누구인지, 등장인물 스물두 명의 표정과 행색을 꼼꼼히 뜯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단원이 왜 그림 속에 손이나 발 모양을 엉터리로 그려놓았는지, 그 이유는커녕 잘못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얼치기 구경꾼이 수두룩하다. 단원의 ‘잘못’을 저자는 당시 그림 수요자인 서민을 위한 장난스런 배려이거나 우뇌가 발달한 화가의 실수라며 재미난 진단을 덧붙이지만, 공부 많이 한 사람보다 여유를 가진 사람이 그림에서 꼭 봐야할 것을 본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그 여유는 시간을 거슬러 당대의 풍속에 푹 젖고 싶은 자의 너름새에 다름 아닐 터이다.
저자는 독자의 호기심을 위해 책 곳곳에 해학과 궁금증을 심어놓는다.
‘마상청앵도’에서 시종은 ‘롱다리’인데 선비는 ‘숏다리’로 표현한 연유는 이 책을 읽어야 안다.
바위 곁에서 나비를 바라보는 고양이와 패랭이꽃, 제비꽃 등이 들어있는 작고 귀여운 그림 ‘황묘농접도’가 왜 ‘생신을 맞은 주인이 여든 노인이 되도록 청춘처럼 곱게 장수하고 하는 일 뜻대로 이뤄지길 빈다’는 길고 긴 해설을 낳는지, 이 책을 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만 좇는 책도 아니다.
‘이재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이 기실 손자 이채의 늙은 시절 초상화임을 밝혀나가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끈질긴 탐구욕이 감탄스럽다.
선인의 사유체계를 알아야 온전히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며 음양오행을 풀어주고, 정선의 ‘금강전도’를 태극의 구도로 설명하는 저자의 속내는 옛 그림에 어설프게 미친 자가 닿을 수 없는 성심의 경지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을 독자는 책을 덮을 때 오주석의 빈 자리가 쓸쓸해질지 모른다.
손철주 학고재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