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시기이다. 수능준비로 다른 것에는 신경도 쓸 수 없었던 고등학교시절을 지나 들어온 대학은 보다 넓고 새로운 세상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직장을 가진다면 그 생활 속에서 또다른 형태의 인간관계를 접하게된다. 이현의 소설 수라도는 순수하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선배의 추천으로 읽게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이게 웬걸, 암울하기짝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제목인 중편소설 『수라도』 외에도 『시선에 대하여』, 『개와 맥주』, 『노조탄생』, 『대미』의 단편도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있었다. 여기에서 그리는 인간세상의 모습은 선악이 불분명하고 물질만을 탐하며 마군(魔軍)이 판치는 아수라장이다. 중소기업사장이었던 ‘나’의 눈을 통해서 박영감, 법사, 주지스님, 총무스님, 권오달 등의 주위사람들을 바라보는 내용인데, 주된 배경이 절이라는 점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군수사관출신으로 절의 뒷조사를 하는 박영감, 수행은 뒷전이고 술과 여자를 탐하는 법사, 무언가 비리가 있는듯한 총무스님, ‘나’에게 사기를 치는 기술자 권오달이 만드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없고 강자만이 정의인 세상이다.
어쩌면 이런 문제들이 제도의 문제로 보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만드는 무한경쟁과 황금만능주의, 비인간화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조탄생』에도 살짝 언급된 것과 같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실제세상에서는 나름의 문제가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만들고 이용하는(혹은 속박되어버린) 인간의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진 가치관은 알게모르게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다. 좋든싫든 인간인이상 인간관계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고, 그 인간을 대하는 태도 또한 중요해진다. 소설 속의 박영감은 말한다. 인간은 동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약육강식의 원리에 지배되는 하나의 동물일 뿐이라고. 강한 것이 선이고 약한 것이 악인 존재라고. 생존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슬픈 이야기이다. 설령 이것이 진실일지라도, 20대의 젊은이로서 이런 가치관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본다. 물론 이것이 진실이라고도 생각하지않는다. 그렇다고 ‘나’처럼 너무 인간을 믿고 배신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못하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 믿음이 깨어질때의 충격은 인생에 대한 허무마저 느끼게한다. 결국 이것은 개인의 가치관 문제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개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어쩔수없이 중요하고, 그렇다면 이왕이면 인간에 대해 좀더 긍정적이고 열린 태도로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는 편이 수라가 지배하는 이 모순된 세상을 바꿔나가는 한가지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