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 ‘사랑’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서론
필요에 의해 생겨난 진보와 상호 의존 관계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상호 의존 관계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상호 의존 관계라 함은 단순히 맺어진 경제적 관계 따위를 넘어서, 친밀감이나 유대감 등을 가지고 교류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사교성을 비롯한 개인의 성격 차이에 따라 그 관계의 범위나 깊이에 차이가 있긴 하나, 최소한의 인간관계나마 유지할지언정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전무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는 사회 상태에서의 상호 의존 관계가 자연 상태의 미개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현대인으로 점차 이행하면서 생겨났다고 보는데, 그 원인을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사회의 존재 의의를 단순 ‘필요’에 의한 것만으로 보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루소는 자연 상태의 미개인이 현대 사회의 문명인으로 나아가는 모든 진보를 ‘필요’를 통해 설명한다. 루소에 의하면 이러한 진보의 ‘필요’는 이전에는 미개인의 모든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던 자연이 변화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자연이 더 이상은 미개인을 보살피며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 상태가 우연적으로 급변하여 인간에게 우호적인 환경에서 그렇지 못한 상태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진보에 대한 필요가 발생했다고 보는 루소의 논증은 순수하게 그의 가정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가 인간의 자급자족을 위해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미개인들에게 기술의 필요가 발생했다는 것은 역사학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인간의 진보 과정과 그 맥락이 상통한다. 특히, 루소가 가정 하였던 미개인의 직립 보행과 이로 인해 자유로워진 손으로 무언가를 거머쥐고 던질 수 있게 되며 시작된 도구의 발달은 선사 시대의 전개 과정과 관련하여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1)
뿐만 아니라, 루소가 진보의 일부로서 제시했던 농업과 야금술의 발달 역시 인류학계에서 계급 사회의 시작과 심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생각되는 요인들이다. 농업으로 인해 발생한 잉여 생산물은 소유의 차이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곧 경제적 격차를 기반으로 한 계급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경제적인 부를 확보하게 된 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계급을 만들어낸 것이다. 야금술은 생산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으므로, 농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불평등에 더욱 기여했다.2) 결국, 루소에 의하면 제도와 정치 체제의 등장과 발전 역시 부자들의 ‘필요’에서 일부분 기인했다. 물론 이 역시도 반드시 부자들의 편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기적인 수단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제도와 정치 체제는 개선을 거듭하며 사회 질서 유지와 갈등 해결에 효과적인 기준이 되어왔고, 이를 정의에 부합하게 실행하기 위한 고민과 논쟁 역시 계속해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3) 그러나 부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발생하였든 질서 유지를 위한 체제로서 발생하였든, 필요의 종류는 달랐을지 몰라도 필요 자체가 발생했으며, 이것이 자연 상태의 미개인을 오늘날의 상태로 이끌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정리하자면, 자연 상태가 태초에는 인간에게 요람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가 우연적인 계기로 급격히 변화한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풍요롭지 못한 자연 상태로 인해 인간에게 진보에 대한 필요가 발생했다는 것은 동의의 여지가 있다.
본론
루소의 주장에 대한 반론1 - 상호 관계의 가치
루소의 관점에서 이러한 사회 진보의 중심에는 ‘상호 관계’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루소에 의하면 자연 상태의 미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점차 독자적으로 생존을 추구하기 보다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루소는 인간이 ‘관계’ 속에 의존하여 살아가게 되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 또한 그곳에서 찾고, 이로 인해 미개인의 자연적인 성질이 변질되어 버렸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이전과는 달리 타인과의 관계나 시선을 개의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4) 그런데 인간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은 정말로 해악만을 가져온 것일까? 인간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주 표면적으로만 분석해도,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은 다양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상호 작용을 통해 ‘협동’의 가치를 느끼고 서로에게 협조하며 상부상조의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 한 사람의 ‘자아’는 개인의 가정, 친구 관계, 학교, 직장 등 무수히 많은 집단속에서 형성된다고 여겨질 만큼 ‘상호 관계’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이러한 사회 상태 속에서 형성된 자아를 루소는 ‘왜곡된 인간상’이라고 보며 비판했지만, 개인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각 집단 별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사랑의 가치를 배워간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단순 이성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사랑부터 친구간의 우정, 사제지간의 결속감 역시 포함한다.
루소의 주장에 대한 반론2 – 루소가 주장하는 ‘사랑’의 개념에서 나타나는 모순
인간 간에 발생했던 ‘상호 관계’에 관하여 논의하려면 루소가 부정적인 정념으로 보았던 ‘사랑’에 관한 분석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념은 기본적으로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홀로 존재하는 미개인은 정념을 느끼지 않았다. 루소는 사랑을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 미개인은 전자만을 지니고 있으며 후자는 현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성과 결합하며 발달한 정념에 속한다고 본다. 또한 루소는 정념이 인간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왔으며, 특히 사랑은 질투와 불륜과 같은 악덕을 낳았다고 본다.5)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일 때는 일반적으로 이성적 감정을 의미하지만, 정의6)에 따르면 부부애나 부성애, 모성애와 같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간의 유대감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의 범주 안에 포함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인 사랑이 본능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다. 루소는 본능이 오로지 자기 생존의 욕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종족 번식의 욕구 또한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다시 말해, 미개인이 육체적 사랑을 추구하며 쾌락을 위해 성욕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이유 없는 본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 보존이라는 더 기본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7) 루소는 미개인이 사회에서 형성된 이성에 선행하는 두 가지 감정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스스로의 생존을 추구하는 자기애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고통을 보기 싫어하는 연민이다. 그런데 루소가 연민을 종의 보존을 지켜주는 일종의 규범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루소 역시 종족 보존에 대한 본능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루소는 정신적인 사랑의 범주에 분류했던 부성애나 모성애, 혹은 부모 자식 간에 형성되는 애착 역시 이성과 결합된 정념이 아니라 본능에 속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러한 종족 보존에 대한 본능에서 기인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루소의 주장에 대한 반론3 – 본능적 정념인 ‘사랑’의 가치
사실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역시 본능에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실험이 존재한다. 애착 심리학자로 유명한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가짜 원숭이 어미 실험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전의 과학자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이전의 과학자들은 애착이란 허기나 갈증, 성욕이라는 원초적 충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충동 이론’을 보편적으로 믿었다. 그러나 해리 할로는 이에 의심을 품고 유아기의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할로는 원숭이들이 우유를 든 금속 재질의 가짜 어미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친어미와 격리된 원숭이들을 두 가짜 어미와 같은 방에 두고서 위협을 가하며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원숭이들은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 달려갔다.9) 이 실험은 감촉이 주었던 ‘편안함(comfort)’이 애정과 사랑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실험에 사용된 원숭이들은 루소가 생각하던 미개인의 상태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미개인의 사랑 역시 입맛이 아니라 정신적인 편안함(comfort)으로부터 형성될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이러한 원숭이들의 부모에 대한 애착조차도 ‘상호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루소가 말하는 온전히 독립적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 않는 미개인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재반론을 하자면 이 실험은 유아기의 원숭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킨 뒤에 진행 되었으며, 이런 유아기의 원숭이들은 루소의 가정대로라면 ‘상호 관계’를 인식하고 형성하기에는 상당히 짧은 시간만이 흐른 상태였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루소는 ‘상호 관계’가 사회의 산물이라고 보지만 유아기의 원숭이들은 소위 ‘사회’를 인식하기에는 어린 상태였기 때문에, 할로의 실험 결과는 애착 역시 사회 속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위협에 노출되었을 때, 즉 원초적인 본능이 더 잘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원숭이들이 ‘젖’보다 ‘온기’를 주는 어미로부터 ‘심리적 안정감(comfort)’를 느꼈던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사랑이 본능에 속하는 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루소는 정신적인 사랑을 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사랑의 가치는 유의미하다. 루소는 “다른 모든 정념과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그토록 자주 인간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오게 만드는 저 격렬한 열정을 사회 속에서 획득”하였다고 보지만10) 사랑은 그보다 훨씬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랑은 현실에서 정말 본능적으로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례들을 설명하곤 한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했던 친구간의 우정에서 나타나는 신뢰와 믿음은 단순한 ‘필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은 사제지간에 나타나는 유대감과 존중 역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숭고하고 존엄한 희생의 이유가 되기도 하며, 거룩한 인류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희생이나 인류애와 같은 요소들은 루소가 이성 이전에 존재한다고 보았던 ‘자기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소중히 하려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결론
사회의 존재 의의 – 상호 의존 관계와 ‘사랑’의 가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격언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말은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곳에 소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특성을 나타낸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선악이나 행동의 동기, 유전자와 문화의 지배력과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있어 제각기 의견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사회 구조를 벗어나 살았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11) 즉, 사회성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특성이며, 현대 사회에 나타나는 ‘상호 관계’는 이러한 본능이 발현된 결과이다. 루소의 관점과 같이 사회의 시작은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타당성이 존재하며 합리적으로 수용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나타난 모든 진보와 사회의 존재 가치를 ‘필요’만으로 보는 것은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상호 관계’를 통해 인간이 누리는 가치들을 간과한 것이다. 이러한 ‘상호 관계’, 특히 그 중 ‘사랑’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공통적으로 사랑은 수지타산과 손익의 관점에 근거한 철저한 거래가 아니라 인격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12) 와타나베 가즈코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한 감정이 아니다. 결의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13)” 사랑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이 글에서 담아내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의 가치는 단순히 자기애에서 파생된 것 이상이며, 이러한 사랑이 나타나는 사회의 존재 의의는 ‘필요’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김용남, 「(대화로 풀고 세기로 엮은) 대세 세계사 : 인류 탄생부터 13세기까지」, 로고폴리스, 2017, 17-105쪽.
2) 장 자크 루소, 주경복, 고봉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책세상,
2003, 106-10, 112쪽.
3) 마이클 샌델(2010), 이창신, 『정의란 무엇인가』, 파주 : 김영사.
4) 앞의 책, 장 자크 루소, 139쪽.
5) 위의 책, 84-8쪽.
6) "사랑." Def.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N.d. 국립국어원. Web. 20 June 2017.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7) 리처드 도킨슨, 홍영남, 이상임 공역, 『이기적 유전자』, 서울 : 을유문화사, 2010.
8) 앞의 책, 장 자크 루소, 196쪽.
9) Harlow, Harry F., and Robert R. Zimmermann. Affectional Response in the Infant Monkey. Rep. no. 3373.
Vol. 130. N.p.: n.p., 1959. SCIENCE. Web. 20 June 2017.
<http://web.comhem.se/u52239948/08/harlow59.pdf>.
10) 위의 책, 장 자크 루소, 87쪽.
11) 리 듀거킨, 장석봉, 『동물들의 사회생활: 동물들의 속임수와 협동에 관하여』, 서울 : 지호, 2010, 17쪽
12) 최해경, 신수진, 강진경, 「사랑학 (Science for Love)」, 교문사, 2004, 26쪽
13) 와타나베 가즈코, 『사람으로서 소중한 것: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리는 청춘을 위한 인격론 강의』, 최지운 역, 파주 : 21세기 북스,
2005,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