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보드리야르의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어를 10개 정도 뽑아 정리한 책이다. 현대에 맞는 예시를 곁들여서 의미가 있다. 보드리야르 사상의 핵심은 현실을 넘어선 가상현실, 시뮬라르크의 자전으로 이뤄진 시뮬라시옹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가 시뮬라르크가 되는 4 단계를 거쳐서 현실을 완전히 가리고 그에 독립하여 자신이 오롯이 reality가 되버린 현대 후기 산업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개념이다. 이전 아도르노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및 기타 대중문화 이론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푸코의 사상도 저지기계라는 개념에서 살짝 엿보인다.
전제된 것은 우리가 실재를 염원하고,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즉 우리의 인식체계가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그런 페티쉬적인 무엇인가가 고정적으로 우리를 잡아줘야 한다는 무의식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잘 언급되지는 않는다. 더불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시뮬라시옹에서 보드리야르는 람세스 2세 미라 예시 및 기타 원시부족 이야기를 꺼내는데, 근현대 제국주의 서구 과학이 합리성이라는 칼로 난도질한 실재를 비판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이런 '야만'을 지배하였다고 생각하지만 (분석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럴 수 없음을 vengeance of the dead라는 말로 풀어내는데 이 개념에 대한 설명이 책에서는 빠져 아쉽다.
저지기계에서 대표적으로 디즈니랜드를 보드리야르가 말한다. 마치 푸코가 말한 교도소처럼 존재함으로써 그 나머지를 '정상'으로 만들어주지만 실제로는 그 나머지가 그 존재에 의해 '비정상'임이 감춰지는 것이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축소판인데, 미국이 얼마나 '유치한' 국가인가를 숨기는 작용을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 감으로써 나머지 현실세계는 합리적인 공간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이런 대조와 이분법은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으로 서양 철학의 오랜 전통이다. 그리고 우리 인식의 경제성을 향한 훌륭한 기법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우리는 매번 판단하는 일에 온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으로 인해, 우리가 영구히 시뮬라크르에 빠져서는 진짜 실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오히려 방관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보드리야르의 생각에서 개인이 이를 어떠헥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나오진 않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현대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이미지가 만든 욕망에 선-노출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실제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론, 이런 생각을 듣고 있자면 대체 그럼 누가 처음으로 그런 이미지를 생산하며, 또 모두가 이미지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가능한지, 또 기업이 새롭게 추구한다는 것은 모두 그냥 조금 변형된 동일한 어떤 원형 이미지인지 헷갈리는 면이 있다.
구조주의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만큼 선뜻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도 없고 이해도 어렵지만 중요한 점은 우리의 사회가 보는 것만큼 진실되지도 않고, 어쩌면 우리는 영구히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미 인지과학에서 이런 점을 생물학적 한계로서 검토중이며 과거 철학자들도 어느정도 언급한 바 있긴 하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것은 이제는 그 진실이 더는 유의미하게 되지 않은 세상이라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진실은 알 필요도 없고 알 방법도 없고 알고자 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 가짜가 진짜이지 아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