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처음 도서 목록을 훑어 내렸을 때 그 익숙한 이름에 눈길이 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 하지만 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섬세하고 깊은 이성으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려 했을까. 나 자신 조차도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절 스치듯 들은, ‘젊은 나이에 분신자살을 한 청년’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동기에 대해서도 수박 겉 핥듯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야말로 제대로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분신항거 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비록 그의 삶은 너무도 짧았으나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여 배를 곯고 형편이 안 되어 학업에 대한 열망을 마음껏 펼 수 없었음에도 전태일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부당한 현실에 투쟁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투쟁은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특히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과 가족들의 경제적 풍요만을 좇지 아니하고 평화시장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였다. 당시 독재 정권 아래, 부유한 환경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사회는 인간을 물질화하여 인격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꿈과 희망의 날개를 잘라 오직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가난에 대한 분노가 아닌, 이러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부당한 사회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느낀 것이다. 또한, 본인도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위할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그의 의지와 용기를 더욱 불태우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근로기준법의 발견이었다. 그는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 법이라는 틀 안에서 전혀 보호받고 있지 못하는 자신과 동료 노동자들의 현실에 강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엄연히 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이 불타오른 것이다. 전태일은 이러한 사회구조 앞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대신, 당시 대부분의 사회의 약자들이 가지고 있던 노예의식을 벗어던지고 인간다운 이성을 발휘하여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는 이 시점에서 바보회를 조직하여 노동운동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현실의 벽은 높고 차가웠고, 제대로 된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바보회는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로 인해 좌절감에 빠진 전태일은 평화시장을 떠나 오랜 기간 동안 번민하여 마침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마음의 결단을 내린 후 평화시장으로 돌아 온 그는 삼동회를 조직하여 보다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들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부유한 환경에 의해 전태일의 마음속의 분노의 불꽃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삼동회 동료들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모의하였다. 이 때부터 전태일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서라도 현실의 억압의 벽을 뚫고 말겠다는 뜨거운 결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전태일의 마지막 날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마지막 투쟁을 벌였다. 그가 몸에 불이 붙은 채 외친 구호들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였다. 그나마도 불길 때문에 얼마 외치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하던 중 뒤늦게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를 시작하였고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고 외치었다. 생명의 힘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간절히 외칠 만큼 처절한 투쟁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동료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의 못 다 이룬 뜻을 이루어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의 죽음 이후, 자극을 받은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곧이어 종교계도 가담하여 노동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토록 전태일은 자신의 한 몸을 불사지르면서 많은 민중들을 각성하였고, 투쟁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분신투쟁은 단순히 처절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자살 행위가 아니다. 잔인한 사회가 주는 부당한 대우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태우려는 행위이다. 사회가 몰고 가는 비인간의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한 최후의 결단인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그의 타협없는 투쟁이자 처절한 인간선언이다. 안일한 생활을 추구해 볼까 유혹이 들 때면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하였고, 부당한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좌절하여 멈추지 않고, 비록 학력은 짧으나 자신만의 생생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개혁의식을 밝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한 진정한 사상가인 것이다. 그가 끝까지 외쳤던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말 처럼 우리는 그의 정신을 잊지말고 기억하여 인간을 물질화 하는 이 시대에 각성하고 자아를 밝혀 인간의 존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