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노동자, 참된 개혁가, 참된 사람 전태일-
2012313437 사회과학계열
김동환
전태일, 그에 대해 나는 그가 1970년에 노동자로서 시위를 하다가 분신자살을 한 인물이라는 사실, 그 이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국사책에서 잠깐 언급되는 정도,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태일 평전』이라는 이 책은 나에게 전태일이라는 사람의 생애가 어떠했으며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해주었는지, 더 나아가 그의 활동에 대해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그가 참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 다음으로는 그가 열린 의식의 소유자였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그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1948년 아주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항상 굶주렸으며 영민한 머리로 배움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 인물이다. 또한 아버지가 공부를 못하게 하자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가출을 하고 직접 돈을 버는 등의 모습을 통해 현재까지의 나, 더 나아가 현재의 모든 학생들이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공부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마 ‘해야만 하니까.’ 혹은 ‘부모님이 시키니까’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아마 자발적인 공부는 찾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나름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시는 부모님도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공부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느낀 점은 내가 『전태일 평전』의 <어린 시절>부분을 읽고 느낀 것으로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노동자에 대한 의식을 엿보기보다는 나의 현 상황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었던 부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태일의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삶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 취약계층, 즉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큰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2부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에서는 그의 의식이 점차적으로 열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평화시장에서는 시다, 미싱사, 재단사, 재단보조 등등의 직책이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전태일도 제일 낮은 직책인 시다로 평화시장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시다로 시작해서 미싱사가 되기까지 여러 여공들의 옆에서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병을 앓고, 그저 가게 주인들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하는 참상을 지켜봐 왔다. 결국 그는 이러한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여공들을 조금 더 챙겨줄 수 있을 재단사가 되기로 한다. 그는 낮은 임금을 받으며 재단사의 생활을 시작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식비를 아껴 약을 사주거나 그들의 일을 대신해주는 등의 호의를 배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는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저항할 수 있는 깨어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다. 또한 만약 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약 시다를 거쳐 미싱사가 되었다면 나는 그 전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내가 미싱사가 됐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전에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내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고 친구들이 겪는 것을 목격했을지라도 그 일이 지나간 일이 될 경우 그것들을 그저 묵인하고 넘겨버리곤 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저 현실에 순응하는 닫혀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여공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주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참된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2부의 마지막 부분, 3부 <바보회의 조식> 그리고 4부 <전태일 사상>에서는 그의 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어지고 심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책에 나와있다. 첫 번째 단계는 그 자신이 재단사가 되어 여공들을 돌보는 온정주의적 방법이고 다음은 기업주와 노동 당국에 진정을 하여 시정을 호소하는 진정주의적 방법이다. 하나는 그가 좋은 업체를 설립하는 것이었고, 이가 불가능임을 깨닫자 그는 시위를 하는 적극투쟁주의적 방법을 띈다. 그는 재단사로 근무할 때 일을 하다가 폐병 3기로 해고를 당하고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을 여공, 피를 토하고 죽은 여공의 사건, 즉 이들의 ‘밑지는 인생’을 보고 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르게 된다. 또한 그는 시다들에게 잘해주다가 해고 당하는데 이 역시 그로 하여금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을 길러줬다. 이 후 그는 근로기준법에 관한 책을 읽었으며 추후에 그는 똑똑한 자, 약삭빠른 자에 반대하는 뜻을 가진 세태와 타협할 줄 모른다는 뜻의 바보라는 단어를 이용해 ‘바보회’를 조직하였다. ‘바보회’의 활동은 전태일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활발해졌고, 처음에 친목단체로 시작한 ‘바보회’는 점차 노동조직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는 이후 노동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평화시장에서 위험분자로 분류되고 직장을 잃는다. 또한 그가 진정서를 들고 근로 감독관실, 노동청을 방문한 이후 그는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결해야 할 상대는 기업주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후 현실에 좌절하여 그는 막노동을 하게 되고 그는 그곳에서 큰 결심을 한다. 나는 특히 그의 일기를 통해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에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 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나는 이 부분이 그의 의지, 노동에 대한 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여공들, 더 나아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일기에서 ‘나를 버린다, 나를 죽인다, 나를 바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에서 그의 의식이 극에 달했으며 그가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읽고 그가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이며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5장 <1970년 11월 13일>에서는 그의 노동문제에 대한 의식이 직접적인 행위로써 표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결심을 한 이후 계속해서 시위를 하고자 계획하지만 여러 단체의 고위직 사람들에 의해 만류되고 시위는 미루어졌다. 그는 ‘참되다’라는 단어가 옳은 일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으며 그는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덩어리를 분해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나 하나 죽어지면 뭔가 달라지겠지……”하고 말하였고 결국 분신자살을 해 그의 목숨을 바쳤다. 그는 23살, 젊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읽은 후 현재의 사회를 돌아 보게 되었다.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한 사회였다. 현재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시대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들은 파업이나 보이콧, 태업 등의 노동쟁의를 통해 기업주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또한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결과물이 전적으로 전태일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사람이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태일의 공로를 인정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