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길었다. 책의 두께도 두꺼웠지만, 책 속에 쓰여 있는 그의 22년 인생이 너무나 길었다. 단순히 한 명의 노동운동자가 아니라 인간해방운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 이 책은 전태일의 어린 시절부터 평화시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신과 동료들이 겪고 있었던 고난의 삶과 고통스러운 노동 현실에 분노하다가 투쟁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6,70년대의 힘겨운 삶과 비인간적인 사회, 지켜지지 않는 법 앞에서 ‘자신의 몸’이라는 돌멩이를 ‘사회’라는 호수에 던져 수많은 파장을 일으켜낸 그의 인생은 비록 2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자신의 유복하지 못했던 인생에 대해 원망하기보단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 살아갔던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읽었던, 신문 기사의 댓글이 생각이 났다. 신문 기사는 유엔 내부의 비리에 대한 글이었고, 기사의 내용보다는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학생이던 시절과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노동운동 시기가 맞물렸다고 한다. 댓글은 “전태일”의 분신자살로 대학생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민주화를 위해 힘쓸 때 전 유엔사무총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다. 민주화운동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는 체 하며 세상의 움직임에 대해 눈감고 공부만 하다가 여러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일궈낸 민주화의 열매만 따 먹었기에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감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또 한 때 내가 닮고자 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서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작정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댓글의 내용이 계속 맴도는 것은 사실이다.
개혁과 그에 따른 희생은 불가분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개혁의 선두’라는 자리를 꺼린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과는 되도록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큰 발걸음을 먼저 내딛어 주었던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바꾸어질 수 있으나, 가장 앞에 서서 큰 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대부분의 희생을, 피해를 자신의 등에 업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선두에 섰던 그 사람이 바로 “전태일”이었다.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하여 힘쓸 때마다 그는 직장을 잃었어야 했고, 자신의 돈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모아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댓글이 계속 곱씹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댓글 속의 인물들을 떠나서, 누군가가 희생하며 일구어낸 결과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익을 가져가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차별이, 억압이, 무시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고, 알고는 있어도 이것에 대해 말할 때 자신에게 올 피해가 무서워 눈감았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말할 용기를 주기 위해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이 책에서 나온 신문기자들을 보자. 군사독재정권에 굴복하여 모든 신문기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평화시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의해, 자본에 의해 그들은 신문을 외국에서 일어난 일, 연예인에 관련된 이야기 등 자질구레한 기사들로 채워나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22살의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는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자 우리가 진정으로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들은 노동자들의 열약한 환경을 알게 되었고, 일반 국민들을 비롯해 지식인, 종교인 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동항쟁운동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바로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돈으로 유가족을 회유하려 했으며 노동운동단체를 해체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전태일”의 뜻을 물려받은 그의 어머니와 그에게 도움 받고 감동받은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노동운동을 계속 전개해 나아간 결과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전태일”이 요구했던 환풍기 설치, 근로시간 준수 등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까지도 그가 요구했던 모든 사항들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열약한 노동 환경이 노동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의 정신을 끝까지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일궈낸 변화가 사회에 많이 기여했다고 해서 그의 목숨이 참 값지게 사용되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분신자살사건”에 초점을 두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면서까지 만들어내고, 변화시키고 싶어 했던 현실에 눈을 맞추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부끄러운 현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그를 생각하면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6.70년대의 불합리한 정부도, 사회적 약자를 착취했던 현실도 더 이상은 만들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세상이 만들려 노력하는 우매한 민중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우리의 사회를 직면할 수 있는 눈을 키우고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