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짜릿한 책이다. 허구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너무 사실 같아서 '소설' 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이다. 이 책을 쓰는 데에 엄청난 자료 조사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학, 특히 약학에 대한 엄청난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일본인 주인공이 신약을 개발하려는 약학 대학원생인 까닭이다.
줄거리를 쓰다가, 1000자 넘게까지 써도 부족해서 너무 길어져서 줄거리를 쓰는 건 무리라고 느꼈다. 그만큼 이 책은 치밀하고 복잡하게 짜여 있다. 군사작전, 신약 개발, 초인류, 인류의 미래... 너무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서 몇 문장으로 줄이기도 힘든 정도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몇 가지 점들을 적으려고 한다. 그것들만 적어도 분량이 꽤 될 것 같다.
첫 번째로, 전쟁이 무서운 것은 '헝거게임' 시리즈를 읽어서 느끼고 있었지만, 이 책을 보니까 단순히 전쟁을 하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끔찍했다. 상대방을 칼로 베고, 총으로 쏘고, 폭탄으로 격추시키는 행위들은 얼마나 인간성을 상실한 행동들인가.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깝다고 하고 싶다. 전쟁이 끝난 후 적군을 죽인 군인들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장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두 번째, 전쟁이 무섭다고, 어서 전쟁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는 나도, 전쟁을 하는 사람들도, 전부 같은 인간이다. 인간은 한 입으로는 전쟁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같은 종족인 사람들을 죽인다. 이처럼 모순된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서로의 민족을 '학살'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그런 인류를, 초인류가 바라보면 고릴라 영토싸움을 바라보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같겠지. 나는 그런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해보았자 결국 욕망을 가지고 서로를 죽이는 동물인 인간이다. 물론 선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러나 하인즈만 박사의 말대로, 그 행동들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미덕'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애초에 선했으면 그런 선행들을 당연시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부끄럽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거만해하면서 서로를 죽이는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셋째, 이 책에서 미국 대통령인 '번즈'는 말만 대통령이지, 거의 독재자 수준이다. 번즈는 옆에 핵미사일 발사 도구들을 끼고 정치한다.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는 것은 모조리 해치운다. 그가 미국의 안보와 인류의 존속에 위협이 된다는 초인류가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 초인류가 속해있는 사회집단까지 말살하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재자가 강대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세계는 위험하다.
넷째, 이야기 속에서 나온 아프리카 반란군, 유엔 평화군, 그리고 소년병들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이다. 현실에 진짜 있는 이야기들이고, 이 책은 그 사실들을 단순히 반영했을 뿐이다. 몇 반란군들은 다른 민족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식품과 자원을 약탈하고 여성들을 강간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견한다는 유엔 평화군들은 현지 여성에게 성적 학대를 가한다. 소년병들은 징병이 강요될 때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목을 잘라라는 명령을 듣는다. 거부하면 죽는다. 살아남으려면 그 끔찍한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소년병들은 그 어린 나이에 총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들은 즉각 처벌당한다. 아무도 못 믿고, 사랑도 없고, 돈과 마약과 담배와 살생에 취해 살아간다. 초등학교에 가서 한창 배우면서 희망을 갖고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나이에, 마음이 황폐해진 채로 적을 죽이는 기계가 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끔찍하다.
다섯 번째로, 아주 여러 번 느끼고 독서록에다가 적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항상 감시당한다. 그 시작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시작해서, 페이스북과 인공지능을 거쳐서, 여기에 도착했다. 모든 정보를 모으고 기록하는 비밀 기관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지 않다. 전화를 감청당하고 메일을 해킹당하고 망원경으로 얼굴 사진이 찍히는 것은 연예인들이거나 정치적 인사들, 범죄자들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다. 과연 우리는 사생활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여섯째. 초인류가 나타나면 신과 비슷해서, 우리가 공격하면 더 세게 공격하지만 협조하면 즉각 협조할 것이라는 책 속의 이야기. 그렇게만 되면 그나마 좋을 것이다. 그러나 초인류가 공격적이라서 인간을 몰아내고 지구를 장악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얕보고 멸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동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초인류의 입장에서는 '인간' 이라는 동물은, 다른 종류의 동물보다 지적 능력이 살짝 더 뛰어나지만, 자신들에게는 한참 떨어지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 개체 수를 조절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동물원 같은 곳에 넣겠지. '개', '고양이', '새', '원숭이', '사자', 그리고 '인간'.
느낀 게 너무 많지만 여기까지 적겠다. 이 부족한 뇌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읽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래봤자 당신도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