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판매가 개시되었던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 미니가 몇 시간만에 품절되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빅스비를 사용하는 영상들을 보았는데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요청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이런 기능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가장 부자연스러운 점은 인공지능을 호출할 때 말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단어들이다. "하이 갤럭시", "하이 빅스비","헤이 카카오"라니....솔직히 조금 부끄러운 호칭이기도 하고 그거 신경써서 말 할 시간에 내 손으로 입력하는게 훨씬 간단하고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유용하긴 하겠지만, 아직까지 주변 소음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또박또박 발음해야 잘 인식된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나는 완벽한 인공지능 비서가 생긴다거나 영화 '허'에 나오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미래에는 내가 부를 호칭을 정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유형의 인공지능 말고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인공지능이 있겠지만, 책에서도 다루다시피 '언어'라는 영역, 특히 텍스트가 아닌 '말'이라는 영역은 기계가 가장 습득하고 활용하기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음성이라는 것은 그것의 문자적인 의미 말고도 억양이나 말의 크기 등에 따라서도 충분히 해석이 다양하게 될 수 있기 떄문에 삼차원 적인 정보 분석이 필요하고, 오류가 나기 정말 쉽다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엔 도스를 사용할 때처럼 사람이 기계의 언어를 배워서 써야 했는데, 윈도우즈와 마우스로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요즘에는 터치스크린이나 펜, 음성으로 정말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과 기계의 거리는 많이 좁혀진 셈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해놓은 마지막 장도 흥미로웠는데, 미래에는 기계가 많은 생산을 대신하기 때문에 인간이 굳이 죽어라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낮은 수준의 생활 여건이 저절로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노동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고, 인류는 정부가 제공해주는 기본적인 의식주만을 누리며 자유롭게 사는 히피족과 자신이 열정있는 영역에서 계속해서 일을 해나가며 노동을 하는 여피족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책 <오래된 미래>에서 본 라다크 사람들의 이야기 같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 만한 여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문명이라는 요소는 인간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드는 법이다. 뭔가 비관적이긴 한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서로서로 누가 더 잘사나를 항상 비교하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저런 사회가 되어도 문제도 많이 생기고 불행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사실은 기술발전이 불러오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제도적으로나 사회적 인식의 측면에서 끊임없이 고민과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현재에만 급급하다보니 그러지 못하는게 아쉽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무원이 되려는 많은 젊은이들을 노량진의 원룸에서 공부하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생각도 많이 해보게 할 것 같다. 그만큼 요즘에는 정부와 제도가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서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