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숲은 가장 다양한 숲이다. 푸른 숲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꽂들이다. 다양한 채도의 초록빛으로 칠해진 숲 속에서 선명한 빛깔로 향기를
뿜는 꽃들은 아주 멀리서도 그 존재를 과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원이나 식탁, 결혼식장으로 가기도 하고, 향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만약 숲에 싹트는 생명들이 모두 꽃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어떻게 될까? 숲에는
거울이 없기에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바람결에 맞서 보고, 비를 맞아보며 내가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어떨 때 강하고, 약한 지 용기를 가지고 알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생명들이 눈 앞의 화려한 꽃을 보고, 다른 이의 찬사를
듣고, 꽃이 되기를 소망한다. 두껍고, 강한 몸을 얇게 깎으려 하고, 더 화사한 빛깔을 내려한다. 꽃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이 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나만의 길을 찾아 남들과는 다른 나의 선택들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숲에
꽃들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꽃밭일 것이다. 꽃들 만이 가득한 들판은 겨울에는 황량하고, 바람 결에는 쉽사리 망가져 버리며, 숲의 동물들은 여린 줄기 사이로
살 집을 찾지 못할 것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꽃들 위로 거대한 나무들이 뻗어 있고, 연둣빛 풀들이 뿌려져 있고, 키 작은 관목들이 돋아서 거대한 다양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제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마냥 사회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려 하지 않고, 자신은 자신만의 장점을 오롯이 갖춘 커다란 나무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름답고, 부유하며 순종적인 여성이 꽃이 되는 사회에서 그녀는 그런 것들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굳이 자신이 아닌 것이 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기숙 학교 생활을 할 때도, 가장 믿고 의지하던 친구를 잃어버렸을 때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어선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알기에,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녀만의 따스함을
발휘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 취급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는 항상 따스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그녀의 꿋꿋함은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동화 속 왕자처럼 신분
높고 부유한 로체스터가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보통의 사랑 이야기였다면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로체스터가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 제인은 그를 오랫동안 사랑했음에도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한다. 비싼
물건이나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에 현혹되기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너무도 존중했다. 그가 속아서 결혼했지만
여전히 책임져야 할 부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제인은 로체스터의 애원에도 당차게 떠나간다. 그 선택으로
상처받고, 괴로워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돌보며 성장해 나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인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회적으로 그녀의 지위는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그녀는 항상 늘 자기 자신이었고,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늘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제인의 사랑
이야기도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왕자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하는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소설 속 그녀의 외모는 결코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의 사랑인 로체스터는 전 부인을 화재에서 구하려다 불구가 되고 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내면에, 각자의 믿음과 가치관에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다. 제인은 이제는 혼자지만 불구가 된 로체스터를 찾아가 그의 동등한 반려자로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제인이 사랑했던 그의 강인한 성격과 독특함은 그를 그 누구보다 미남으로 만들어주고, 그녀는 서로에게 편안히 의지하는 동등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주인공
제인은 물론이고, 로체스터 역시 사회적 시선에 상관없이 가정 교사로 왔던 신분 낮은 제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제인의 사촌 세인트 존도 본인이 가장 정의롭고,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목사직을 위해 먼 나라로 떠난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숲 속에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숲 속에는 거울이 없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알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쉽사리 용기를 잃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저 아름다운 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지쳐간다. 나무의 행복은 나무가 되는 데 있고, 나비의 행복은 나비가 되는 데 있듯이 나의 행복 역시 오롯이 내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알면서도
잊어버린다. 눈 앞의 화려함에 다른 이의 찬사에 현혹될 때마다 나는 늘 제인 에어를 읽게 된다. 그녀의 당당함, 그 꿋꿋함이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숲의 아름다움은 그 다양성에 있음을 깨우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