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여성, 『제인 에어』
『제인 에어』는 기존의 수동적이고 외모가 빼어난 여주인공의 로맨스 구조를 탈피하여,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답게 구애를 받기는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샬럿 브론테의 결혼관
제인 에어 자체가 아닌 ‘선교사의 아내로서의 제인 에어’라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신 존과 논쟁하며 갈등하는 장면에서 제인 에어를 그렇게 생각하는 그와 그의 사랑을 경멸한다고 외치는 제인 에어를 보면, 제인 에어가 작가 본인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샬럿 브론테 본인의 결혼관과 결혼생활이 상당히 궁금해진다.
흥미롭게도, 사랑 없는 결혼을 경멸한다고 말했던 샬럿 브론테는 앞선 세 번의 거절 끝에 결국 벨 니콜스의 네 번째 청혼을 받아들였다.1) 그렇다면 샬럿은 벨 니콜스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슬프지만 자신의 결혼관에 대한 신념은 어디까지나 소설에서의 로망으로만 남겨두고 타협하였다는 뜻이다. 만약 후자라면, 『제인 에어』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로맨스 스토리의 대명사격인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실제로 한 번은 ‘애정 없는 결혼(Marriage without Affection)’에 대해 회의를 느껴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청혼 승낙을 하루 만에 번복했다는 사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2)
샬럿의 친구들이 벨 니콜스에게 내리는 혹평들3)이나, 샬럿 본인이 신혼여행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결혼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써서 보낸 것으로 봤을 때4) 샬럿이 현실과 타협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샬럿 브론테가 결혼 생활을 하며 마음을 너그럽게 먹게 된 것인지 그녀 자신은 ‘삶에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행복했다고 평가하며5), 벨 니콜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는 해도 ‘샬럿 브론테는 벨 니콜스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6)’라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게스캘의 발언을 봤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꽤나 애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식어 없는 제인 에어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개인의 기억, 외모, 능력, 관계 중 어느 한 가지도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그 수많은 것들이 있어도 스스로를 오롯이 그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자존감을 가졌다. 제인은 그런 스스로를 다잡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보살필 거야. 더 외로울수록, 홀로 남겨질수록, 의지할 이가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길 거야. 제정신일 때, 너무 흥분해서 미치지 않았을 때 내가 받아들였던 원칙을 고수할 거야. 그것들은 고유의 가치가 있어. 나는 쭉 그렇게 믿어왔어.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걸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지켜야 할 건, 이미 다짐해 놓았던 기존의 생각과 이미 기정사실화해 놓았던 결심뿐이야.”
그녀는 가장 혼란스럽고 괴로운 순간에 스스로를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졌고 그래서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자신의 성별에 대해서 기존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들이 무어라고 하든, 제인이 이토록 흔들리지 않고 본인이 결정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 결정하고 정의하는 신념과 믿음 때문이다.
제인 에어가 로체스터와 결혼을 했다고 해도 이러한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가 정의하는 본인이 부정될 때 사람은 절망하고 좌절한다. 스스로를 어떤 다른 사람의 연인으로서만 정의하는 사람은 그 관계가 부정되는 순간 본인의 정체성을 잃고 좌절한다. 그러나 제인 에어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로체스터와의 결혼으로 인해 제인은 더 큰 행복을 느끼고 또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말하지만, 그래도 제인 에어는 여전히 제인 에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혹은 누군가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주체이다. 당당하고 능동적인 사람은 아름답다. 그래서 제인 에어는 매력적이다.
1) Miller, Lucasta (2002). The Brontë Myth. London: Vintage, pp. 54-5
2) Letter dated 18–20 November 1814, in Le Faye (1995), pp. 278–282.
3) 엘렌 누시(Ellen Nursey)는 벨 니콜스를 ‘샬럿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혹평했고, 엘리자베스 개스켈(Elizabeth Gaskell)은 벨 니콜스가 고집불통인데다가 아주 편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엘렌 누시: Campbell, Marie (2001) Strange World of the Brontës, Sigma Leisure, p. 12
엘리자베스 게스켈: Moglen, Helen (1984) Charlotte Brontë: the self conceived,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pp. 232-3
4) Moglen, 앞의 책 p. 235
5) Paddock, Lisa; Rollyson, Carl (2003). The Brontës A to Z. New York: Facts on File, p. 19
6) Mogleen, 앞의 책, pp.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