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재밌어 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옛날 얘기들에 몰입하게 되고, 내가 그 곳에 가있는 듯한 풍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특히 조선의 역사는 리더가 누군지에 따라 통쾌함과 답답함이 교차할 때가 많아서 더 재미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흥망성쇠를 그리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조선의 정세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 모습에 대조해 보는 여흥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조선의 임금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포함하여 조선의 임금들이 왕위를 어떻게 차지 하였으며, 어떻게 유지했는지를 당시 상황과 함께 적절하게 설명하였다. 조선에서 왕이 되는 방법은 적장자계승의 원칙으로, 선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면 수월하게 왕위에 등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품행이 단정치 못하거나, 나태한 인성이라면 왕의 자질에 적절치 아니하다하여 세자책봉에서 차남이나 다른 동생들에게도 밀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조선이라 하면 유교 원칙을 목숨처럼 받드는 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고리타분한 느낌을 많이 받는데, 생각보다 융통성있게 국가 운영을 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대왕인 세종대왕도 태종의 3남으로 태어났으나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학문에 뛰어난 열정을 보이며 왕과 신하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쌓는다. 다행인 것은 이때 장남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선뜻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세자자리를 넘기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동생들을 죽이고 형을 허수아비 왕위에 올려놓을 만큼 자신의 형제들을 이용, 견제하여 백성들에게 좋은 인상은 아니었을 텐데, 이럴 때 세자들이 또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면, 새로운 왕조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실망감만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녕대군의 업적을 재조명해 보았다. 왕으로 선택된 세종은 그 선택에 저버리지 않을 만큼 성군이 되었고, 성군의 기준이 되는 그런 왕이 되었다.
왕으로 선택된 왕이 세종이라면, 선조는 왕위를 지키는 데에 몰두한 왕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하들의 보좌를 받았음에도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한 최악의 군주로 평가받는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에 보인 행보가 그런 평가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선조도 임진왜란 이전에는 성리학에 출중한 재능을 보였고,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등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 하지만 선조는 방계왕족 출신으로 왕위에 올라 자신의 혈통에 대한 컴플렉스가 남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군이 되기만을 강요했던 기라성같은 신하들에게 치이고, 임진왜란을 맞이하며 흔들리는 왕권에 대해 불안감이 컸을 테고, 그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게 아닌가 하고 억지로 이해를 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임진왜란 때 자신은 의주로 도망가면서 죽을 때는 주자의 나라 명나라에서 죽겠다며 고집을 피운 일과 서울에 남아 의병과 관군을 이끌며 성공적인 분조를 해냈던 광해군에 대한 미움이다. 광해군도 차남이지만 장자였던 임해군이 방탕한 탓에 왜란 중 서둘러 세자에 책봉되었던 것이다. 선조는 광해군에게 전란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 방패막이로 삼을려고 했으나, 광해군이 성공적으로 분조를 이끌면서 광해군은 본의 아니게 미운털이 박히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신하들의 충심을 확인하고자 의미없는 양위 선언을 번복했고, 이순신과 의병을 나몰라라했던 소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런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사람들을 이렇게 홀대한다면 후대에 누가 나라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려 할까. 어느 집단에서든, 리더는 충직한 부하에게 마땅한 보상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선조는 혼자만의 컴플렉스에 짓눌려 옹졸한 태도를 보이고 마는데, 굉장히 안타깝다. 만약 선조가 왕권이 강할 필요가 없었던 태평성대의 연산군 시절에 왕이 되었다면 학문이 융성하고 국력도 강해질 수 있었을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크게 성군의 대표인 세종과 무능한 암군의 대표인 선조를 바라보면서, 우리 나라의 리더는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지 기대가 된다. 얼마전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 되는 가운데 부디 현실을 직시한 바른 정책들로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상과 이념만 좇아 포퓰리즘을 이용하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혜안을 마련해주어 성군이 되면 좋겠다. 또한, 내가 리더가 된다면, 선조처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가 오더라도 정신을 놓지않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위기 때 리더의 자질은 빛이 난다. 물론 그것이 어렵겠지만, 한 집단을 이끌어 가기 위해 책임감과 냉철함을 지닌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역사속 임금들을 통해 리더의 덕목과 처절한 암투를 이겨내는 멘탈리티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