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복잡하다. 개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고, 또 그들이 이루는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안다면, 마치 신문이 그러하듯 사실만으로는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적절하게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채택한 방법은 동화와 같은 방법으로 사회를 묘사하는 것이다.
주인공 아질울포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백색의 갑옷 속에 위치한 정신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왕비를 구해주면서 기사 작위를 얻었고, 그 뒤로 여러 명성과 기록을 남기며 카를로스 대제의 전쟁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기 위해선 그가 세운 기록만으론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는 기록과 명성을 증명할 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오묘한 점이 있다. 누가 봐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니, 나는 읽으면서 내내 이 인물이 물리적으로만 존재하지 않지 정신적으로는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의 꼿꼿하고 고집스런 정신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에게는 시체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육체없는 정신은 허망한 말로를 맞는다.
전장에서 그를 만난 기사 지망생 랭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에 합류했고, 후에는 브라다만테라는 여기사에게 반해 그녀를 쫓아다닌다. 그는 처음에는 이유를 갖고 군대에 합류했다. 곧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전쟁과 군대에 실망하고, 원수도 쉽사리 갚게 되자, 그는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살아가는 동기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육체의 감정에 이끌려 브라다만테를 쫓아다니게 된다. 그는 아질울포가 사라진 뒤 그의 갑옷을 갖게 되는데, 곧 그 갑옷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과는 다르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브라다만테는 여전사로 이상적인 기사를 찾아 헤매왔으나 언제나 실망해왔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기사인 아질울포를 만나고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열정적으로 쫓아다닌다. 그녀는 말하자면 이상주의자이다. 그가 찾던 최고의 존재는 아질울포였고, 아질울포가 사라지자 그녀는 마침내 인간적인 랭보를 사랑하게 된다.
구루둘르는 전장에서 만나게 된 기이한 백치로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보는 사물들의 상황을 자신에게 대입하는데, 마치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사람과 같다. 카를로스는 그에게 아질울포의 하인이 되라고 명한다. 그와 관련해서 삽입된 일화들 중 아질울포가 귀부인을 구해주는 에피소드에선 그들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귀부인은 아질울포를 유혹하려 했지만, 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끝끝내 실패한다. 반면, 구르둘르는 여러 하녀들과 쾌락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하녀들과 귀부인이 보낸 대화는 대조되는데, 귀부인은 끝내주는 밤을 보냈다고 하는 반면, 하녀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작중에는 성배 기사단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그들은 오직 성배의 의지와 사랑으로 움직이며 물아일체를 꿈꾸는 기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악행도 성배의 이름 아래에서 자행하는 제멋대로인 집단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고, 성배를 부정하는 행동을 한다.
작품의 이야기는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어질러 놓는다. 작중의 인물들에게 존재란 어떤 것일까. 존재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끌리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기위해 노력한다.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형식인데, 기사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테오도르 수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글쓰기에 전념한다. 이 이야기가 그녀가 쓴 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기사와 대조적으로 존재해왔던 인물들도 결국 글쓰기 속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아질울포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스스로를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들은 수녀의 글쓰기에 따라 존재가 좌우되는 허구의 인물들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은 독자와 텍스트라는 관계를 환기시킨다. 수녀의 글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따져보면서, 그 독자는 또한 등장인물의 실재라는 불가능한 존재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소설의 형식은 존재와 비존재의 그 미스터리한 경계를 허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