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출간되자마자 비평가 알베르 티보데에 의해 “프랑스어로 쓰인, 내면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는1) 평을 받으며 프랑스 문학사에서 그의 입지를 다지게 한 책이다. 이 책은 앙드레 지드 자신과 그의 외사촌 누나이자 아내였던 마들렌의 사랑 이야기를 상당히 반영한 자전적 소설로, 책 전반부에 걸쳐서 나오는 알리사의 편지들은 실제로 마들렌이 보낸 편지들을 과감하게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2). 책의 주된 인물인 제롬과 알리사는 지드와 마들렌을 투영한 인물인데, 지드는 특히 알리사를 통해 그가 아내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잘 살렸다.
도덕적‧종교적 삶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다
그런데 이러한 낭만적인 배경과는 달리, 『좁은 문』의 결말은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은 물론 상대가 느끼는 감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서로 거리를 두고 지내며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청교도적인 가치관은 오늘날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관점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스스로의 감정을 몰라서, 혹은 상대방의 감정을 몰라서 맞는 비극이라면 모를까, 가슴으로는 사랑을 했지만 머리로 따르는 ‘신앙’을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맞는 비극은 생경하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도덕적 신념이라고 믿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를 그들 자신의 감정보다 우위에 두었다. 지드는 두 인물을 통해 종교적 이상으로 자연적 본능을 억제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했기 때문에3) 두 인물의 수동적인 태도는 지드가 항상 비판하며 벗어나고자 했던 도덕과 종교의 굴레나 마찬가지다. 지드는 일생동안 순응주의나 독단주의를 두려워하며, 자신이 내린 선택이 습관이나 관습으로 경직됨으로써 스스로 그 선택 속에 갇혀 버리는 것을 지양하고자 했다4).
그러나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롬과 알리사가 했던 사랑의 진정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제롬과 알리사 모두 과도한 자기 희생적 가치관과 왜곡된 종교의식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 때문에 파멸을 맞이하고 말았지만, 작가 본인이 아내와의 사랑과 그 추억의 순수함으로 우려낸 만큼 그들의 모습은 답답해보일지언정 거짓되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만의 방식으로 한 절절하고 슬픈 사랑을 그려낸 느낌이다.
제롬의 내면 묘사와 알리사의 편지에서 둘이 서로를 얼마나 순수하게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그들이 그들의 사랑을 병적으로 희생시키고 고통을 받는다 해도, 독자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 깨끗하고 성스러운, 때 묻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의지적이고 금욕적인 알리사의 모습에서는 불필요한 영웅주의일지라도 종교적 열정과 이상의 고귀함이 느껴진다. 지드 역시 폴 클로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종교적이고 순수한 감동이며, 사람들이 알리사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고, 감탄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쥘 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여주인공 알리사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말한다5). 즉, 그들의 태도는 경계하고 비판하되, 그렇지 못했던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라
재밌는 것은, 이러한 지드의 뜻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그가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지드가 작품을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는 보통 그가 다른 이에게 쓴 편지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쓴 일기에서야 드러났다. 그는 작품 세계에 있어 아무런 목적도 지향하지 않는 무상(無償)의 예술을 그리고자 했으며,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하는 데에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드는 종교적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맹목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했던 제롬이나 알리사의 태도를 비판했던 만큼, 자신이 『좁은 문』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 밝히기보다는 독자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생각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드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했던 역할을 충실히 다 한 셈이다.
1) 앙드레 지드, 이성복, 『좁은 문』,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3, 225쪽.
2) 위의 책, 222쪽.
3) 위의 책, 224쪽.
4) 위의 책, 233쪽.
5) 위의 책, 230쪽.